▲적당한 거리
달그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우리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던 우리의 문화 유산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킨 유홍준 교수의 말씀입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에서 우리가 지나치던 불국사의 돌층계 하나도 거기에 얽힌 '사연'을 읽고 보면 달라 보였지요.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읽다 보면 그저 돌탑 하나, 그저 도자기 하나가 없습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 다른 식물들을 돌보는 사랑의 마음은 유홍준 교수가 말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랑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원이 하나로 겹쳐지듯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던가요? 결혼식 주례에서도 나오잖아요. 이제 '하나'가 된 두 사람은 하고. 그런데 그 '하나'가 문제예요. '하나'여야 한다는 '사랑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트러블'이 발생합니다. 왜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너와 내가 사랑하는데 다르냐고 물음표들이 난무합니다.
심리학이 학문으로 정립된 지 100여 년, 프로이트 이래 많은 학자들이 인간 심리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해결 방법을 제시해왔지만, 그 '심리적 문제'의 중심에 있는 건 결국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관계'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적당한 거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우리를 괴롭혀왔던 문제에 대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애초에 '다르다'고요. 한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들이 저마다 다른데,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의 세계가, 백 사람에게는 백 사람의 세계가 있겠지요. 애초에 다르니 당연히 관계가 내 맘대로 될 리가 없고, 세상 일이 내 뜻대로 풀어지지 않겠지요.
그런데 그 '다름'이 겹쳐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너'가 내가 아니고 다르다는 걸 알 수 있겠어요. '적당한 거리'는 바로 그 '다름'이 보일 때까지 물러섬입니다. 그 다름을 보기 위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물러서는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랑하기 위해 다가서고 함께 하고 원이 겹쳐지듯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해법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