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난 해 환갑을 맞았다. 앞서 딸들에게 용돈 한 번 받지 않았던 그였지만, 환갑이었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현금 50만원과 꽃다발이었다. 아버지가 여전히 자신의 차에 싣고 다니는 딸들의 마지막 선물이다.
나종기
아버지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여전히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버지와 팔짱 낀 큰 딸, 그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작은 딸.
"친구처럼 재미있게 살자"했던 두 딸은 이제 세상에 없다. 작은 딸의 남자친구가, 작은 딸과 큰 딸을 모두 죽였다. '당진자매살인사건'이라 세간에 알려진, 그 사건이다.
2020년 6월 25일 밤, 김아무개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했다. 둘은 술을 마시다 다퉜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잠든 후 목을 졸랐다. 이후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친구의 언니 집에 침입했다. 다음 날 새벽 퇴근하고 돌아온 언니마저 살해한 후 언니의 휴대폰과 카드, 차량 등을 훔쳐 달아났다. 두 딸의 시신은 6일이 지난 7월 1일에야 발견됐다.
사건 발생 불과 12시간 전, 큰 딸은 아버지에 메시지를 보냈다.
"힘들어도 내 생각 하면서 파이팅하세요~^^ 맘에 안들면 때려쳐요ㅋ 내가 먹여살릴테니께 ㅋㅋ 점심 챙겨드세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점심을 챙기는 다감한 딸이었다. 볼 수 없는 두 딸들을 카톡에서 불러봤다.
"많이 보고싶다. 내 딸들..." (2020년 7월 19일 21:30)
"내 딸들 잘들 지내지." (2020년 7월 22일 14:34)
답이 없다. 대낮에도, 한밤중에도. 그리움이 사무쳤다.
청와대 청원 답변 "마땅한 처벌"... 또 무너진 아버지
아버지는 1심 공판을 앞두고 청와대에 청원을 올렸다.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범인이 제발 마땅한 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또 "그놈의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23일에 올린 청원은 지난 1월 22일에 마감됐다. 26만 545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2월 19일 드디어 청와대 답변이 올라왔다.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에 대해서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국민청원에서 답변을 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중략) 법원에서도 심신미약 감형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부디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마땅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마땅한 처벌... 원론적인 답변 앞에 아버지는 또 무너졌다. "부아가 치밀어서 지난밤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청와대 답변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럴 바엔 국민청원을 왜 해요. 26만 명 청원 동의 받느라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엄청 고생해서 해 놓은 결과물이 뭐예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지난 2월 23일, 근무지인 하남의 한 건설 현장에서 아버지 나종기(61)씨와 만났다. 마스크에 가려진 아버지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버석해 보였다.
"신상 공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1심에서 무기징역이 나왔는데, 무기징역은 가석방돼서 나올 가능성이 높잖아요. 외손주들이 커가고 있는데... 그 놈이 가석방돼서 우리 애들 찾아 나서면 어떻게 해요, 요새 얼마나 빨리 찾아내는데... 내가 죽고 난 뒤에 우리 손녀한테... 제3의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되잖아요. 그뿐이에요."
아버지는 고등학생 손녀가 눈에 밟힌다고 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1월 20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1부(김수정 부장판사)는 강도살인, 절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아무개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도, 피고인 김씨도 항소했다.
"무기징역 받아서 평생 감옥에서 못 나온다, 그게 되면 받아들이겠어요. 그런데 아니잖아요. 감형돼서 나오잖아요. 사형 선고돼도 사형시키지 않는 거 저도 잘 압니다. 그래도 어떡해서든 못 나오게 하려고 이러는 겁니다.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 시킨다면 사형이 마땅합니다. 얼마나 악랄하게 범행을 저지른 건지, 제가 밝혀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