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마 너머로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가 보인다. 윌마를 키우다 보면 도시의 삶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김이진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윌마'라는 이름보다 '율마'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꽃집이나 시장에서는 다들 '율마'라고 부른다. 윌마라고 부르면 못알아 들으니 나도 율마라는 이름이 편한데 정식 이름은 윌마가 맞다.
모양새는 아이들이 나무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슥슥 그려내는 원추형이다. 잎은 눈송이 입자 같기도 하고, 깃털처럼 보이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나무 형태지만 가까이서 보면 보슬보슬하고 귀엽다.
나는 이번에 윌마를 키우는 게 3차 시도다. 내가 식물이 전달하는 신호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탓이겠지만 1, 2차 모두 별다른 징후도 없이 한방에 죽어버렸다.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되도록 멀리하고 있었는데 그 특유의 싱그러운 연둣빛에 나도 모르게 낚이고 말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뭐가 달라도 달라지지 않았겠나 싶은 막연한 생각에 데려왔다.
윌마를 처음 키울 때는 아무런 정보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선물을 받아 키우기 시작해 몇 주 지나지 않아 타들어가듯 말라 죽었고, 그 다음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키웠는데 반년을 채우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었다. 겨울 초입 무렵이었다. 두 경우 다 줄기와 잎이 아래쪽부터 슬금슬금 갈색으로 변하면서 조금씩 말라가다가 전체가 다 변색되어 죽어 버렸다. 윌마를 두 번이나 보낸 죽음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확실한 건 물에 아주 까다롭다는 거고, 추위에 예민하다는 짐작 정도다.
3차 시도는 달라야 한다. 도대체 너의 정체가 무엇이냣. 윌마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측백나뭇과, 학명은 쿠프레수스 마크로카파(Cupressus macrocarpa) 윌마(Wilma)다. 친해지려고 일부러 학명까지 불러본다. 입에 잘 달라붙지 않는 어려운 이름이다. 그리고 상록 침엽 교목이라고 나름대로 붙여봤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 않고 늘 연둣빛이니까 상록이고, 잎 끝이 뾰족하니까 침엽이고, 키는 크지 않지만 원줄기와 가지의 구분이 명확하니까 교목이라고 했다. 관목과 교목 사이에서 좀 망설여지긴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의식적으로 자꾸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고, 과 목 이런 것들을 파악하려 애쓰는 건 식물의 성격을 파악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제 성격대로 자라니까.
막상 데려오니 죽어버린 옛 기억이 문득 문득 떠올라 평소보다 부지런히 베란다에 들락거렸다. 겉흙이 마르지 않았는지, 잎은 짱짱한지 만져보면서 확인하곤 했다. 윌마는 표현에 아주 인색한 편이다. 잎을 손으로 슥 만져봐서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으면 물이 충분한 거고, 맥없이 보드랍게 느껴지면 물이 부족하단 신호다. 이 시기를 놓쳐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윌마와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