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심곡천심곡천 산책로에 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장순심
나의 엄마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행을 가는 것도, 옷 한 벌 사는 것도 어색해진 사람', 늘 걱정을 달고 살며 '혼자서는 마음 편히 떠나는 게 전혀 안 되었는 사람', 정말 그랬던 엄마가 떠올랐다. '동네 담벼락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걸음 멈추는 사람', '티브이를 켜고 잠이 들고 티브이 속 이야기에 울고 웃는 사람', 지금의 내 모습도 있었다.
이 쓸쓸하고 무거운 인생이 엄마라면 마다하고 싶었다. 아직도 많이 남은 앞으로의 삶이 찬란하지는 않아도 매일 잠깐씩은 존재 자체로 눈부시고 싶다. 애잔하고 안쓰러운 그 나이 듦은 부정하고 싶다. 노랫말을 따로 뚝 떼어 놓으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서 더 서글펐다. 가사 그대로인 나는 너무 속을 들킨 것 같아 짐짓 다르게 보이고 싶어졌다.
다시 꽃밭에 멈췄다. 꽃은 여전히 아름답고 꽃과 함께인 나는 여전히 어색하다. 만들어진 듯한 웃음은 그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지 싶다. 생생하고 화사한 꽃과 비교되는 시들한 피부, 주름진 얼굴, 그것이 부끄러워 주춤하는 몸짓이 유쾌하지 않다. 그런 모습이 싫으면서도 어느새 꽃과 나란하게 얼굴을 가져다 댄다.
노랫말의 마지막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자신을 찾는 '별과 사랑을 했던' 젊은 시절, 그 추억이 그리워 꽃밭을 찾는 나이 든 엄마. 다시 꽃으로 피어날 수 없고 따라오던 별도 사라졌지만, 자식이 커가는 모습에 모든 사랑을 쏟은 엄마의 고백이 따라왔다.
엄마의 고백은 세상 어머니들의 고백이기도 했다. 초록빛 성성하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꽃밭에 쪼그려 앉아 꽃을 보는, 그 꽃을 닮은 자녀를 키워 낸 세상의 엄마들의 이야기, 그 노래를 조용히 들었다.
여행을 가는 게 옷 한 벌 사는 게 어색해진 사람.
바삐 지내는 게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해진 사람.
한 번이라도 마음 편히 떠나보는 게 어려운 일이 돼버린 사람.
동네 담벼락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아직도 걸음 멈추는 사람.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티브이를 켜고 잠이 들어버리는 일이 어느새 익숙해진 한 사람.
티브이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얘기에 혼자서 울고 웃는 한 사람.
초록빛 머금은 꽃송이였지. 나를 찾던 별과 사랑을 했지.
그 추억 그리워 꽃밭에 있지.
나는 다시 피어날 수 없지만, 나를 찾던 별도 사라졌지만,
나의 사랑 너의 얼굴에 남아, 너를 안을 때 난 꽃밭에 있어. (김진호,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아직 봄이다. 여전히 길가의 꽃들은 어떤 컬러 사진보다 더 선명한 빛을 내뿜는다. 카메라에 수선화를 담고 조팝꽃을 담는다. 수수하면 수수한 대로 정답고, 시들었으면 시든 대로 눈길이 멎는다. 꽃은 나의 나이듦을 전혀 배려하지 않지만, 쿨 하게 인정한다. 꽃을 보며 나의 눈부셨던 순간을 잠깐 떠올릴 수 있는 것으로, 적어도 오늘의 추억을 더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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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노래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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