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원인을 몸의 취약함으로만 끌어가지 않으려면

갑상선암과 핵발전소 폭발사고

등록 2021.04.13 15:05수정 2021.04.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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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처음으로 받았던 정밀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오른쪽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검사결과를 보던 의사는 요즘 워낙 의학 기술이 발달해 세밀한 것까지 다 포착한다고,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석회화가 의심되니 추가 조직 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갑상선이 아팠던 적도 없고 평소 몸의 걱정했던 부위도 아니어서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직 검사 결과는 기대와는 달랐고 의사는 오랜 이야기 끝에 수술을 권유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왜 갑상선암에 걸렸는지, 왜 이것까지(이미 유육종증 기저질환이 있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를 진료했던 의사는 갑상선암의 발병 원인을 뚜렷하게 알기 어렵지만 가족력이나 방사선 노출 등에 의한 가능성을 말했다. '방사선'이라는 생경한 단어를 조용히 읊조리고 있으니 의사는 가족 중에 갑상선으로 수술한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고개를 저었고 의사는 화제를 전환했다.

진료를 모두 받고 나와서도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방사선이라니, 부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일까.' 우습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고향이 부산인데 근처 바닷가에 원전시설도 많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방사능 유출도 심각했으니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부산이 살고 계시니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머릿속에서 얼른 지워버렸다.

<아픈 몸을 살다>의 저자 아서 프랭크는 "암은 단지 신체 과정의 일부로, 그냥 생겼다"고 말한다. 상당히 의학적인 설명이기도 한데, 배아 발생기에 세포에서 일어나는 과정 중 일부가 잘못되어 암이 생긴다는 것이다(139쪽). 저자는 암이나 질병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일상 습관 등이 잘못되어 질병이 생겼을 거라는 자책을 덜어내기 위해, 암이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라 생각하길 권유한다.

내가 유육종증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저자의 말은 굉장히 위로가 되었다. 유육종증은 발병 원인을 뚜렷하게 알 수 없는 자가면역질환인데,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가장 먼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곱씹어 보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마음이 조금 달랐다. 우연히, 그냥, 찾아왔다고 넘겨버리기엔 일련의 질병들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다. 왜 나야, 라는 물음이 잘 떠나지 않았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얼마 뒤, 셋째 이모가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 가족력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애정하는 가족에게 원인을 묻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생겼다는 근거에 기대기로 했다. 세포가 자라다가 변이가 되어 암으로 되었겠지,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거야. 그런데 의료협동조합 살림의 의사이자 우리 동네 주치의인 추혜인의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은 갑상선암 원인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왜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만 갑상선암이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가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한다. (중략) 하지만 체르노빌에서 1986년에 날아왔던 방사선 낙진의 영향이 과연 없을까? (257-258쪽)

저자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시중 우유 소비량이 줄어들자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우유 급식을 더 많이 하도록 했던 기억을 꺼내며 현재 한국의 갑상선암 발병이 체르노빌 사고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한,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북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 앞바다까지 퍼진 방사선 낙진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아기의 갑상선 기능 저하를 초래한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음을 상기한다.


그러면서 갑상선암과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예방하기 위해 노후된 핵발전소를 점진적으로 폐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방적인 주장을 한다. 발병 원인을 묻지 않기로 했던 내 자신에게로 돌아가 질문을 했다. 나의 갑상선암과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실재했다고 믿기 어려운 30년 전의 사고와 바로 옆 나라에서 일어난 사고가 내 일상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자각은 높지 않았다. 오래전 일이거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이 내 갑상선을 통과했을 것이라고 생생하게 느끼기는 쉽지 않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갑상선 관련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매일 먹고 있는 먹거리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나에게 왔으며, 내가 늘 숨 쉬는 공기가 어디서 어떻게 순환되어 왔는지 알 수 없듯이 두 핵발전소 사고와 나의 갑상선암이 상관없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더욱이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에 대한 증언들은 어떤 질병은 그냥 생기지 않는 것임을 보여준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조한진희는 질병의 개인화를 지적하며 생활습관에 관점을 집중시키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와 구조의 문제는 희미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87쪽)고 주장한다. 질병을 개인적 요인으로만 삼는다면 아픈 사람은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는 자책감을 느끼거나 아프지 않기 위해 식단 관리나 건강 정보에 몰입하는 현상이 높아질 수 있다.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갈 때 건강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구조는 휘발되기 쉽다(같은 책, 68-69쪽).

얼마 전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를 다룬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았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폭발 사고를 접한 소련의 지도부들이 사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전가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드라마이긴 하지만 실제 사건을 가깝게 재현했다). 그 과정에서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생태계 파괴와 오염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일상은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를 내 질병과 연결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감각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하는 탓도 있겠지만, 사회가 공동으로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인에게 위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직접적인 연관이 되지 않게 보이기에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지 않은가.

조한진희가 주장하는 '질병의 개인화'는 개인의 아픔이 결코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할 것이 아님을 지적하면서 아프다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끼거나 배제하는 문화와 구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것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일상에서 어떻게 뿌리박혀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몸이 감각하고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분명 질병은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세포의 변이로 그냥 병이 생길 수도 있지만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또는 자신의 일터에서 경험하는 특정한 상황이나 물질 때문에 생기는 병도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질병의 원인은 비가시화되고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어려우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백혈병, 일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그를 반증한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의 잘못이나 몸의 취약함으로만 끌어가지 않으려면, 다양한 몸들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몸들이 살아가는 사회구조가 어떻게 몸들에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사유와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는 예전에 벌어진 일이며, 오랜 기간 동안 정화작업을 해왔고 또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발생한 방사능이나 오염 물질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각하기 어려운채로 대기를 타고 계속 이동하거나 어딘가로 스며들 뿐이다.

누군가는 나의 갑상선암과 두 폭발 사고를 연결하는 것이 무리라고 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렇게 내 몸이니, 나의 것이라고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에서 내 몸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확신이 없다.
#질병 #핵발전소 #갑상선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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