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교에는 허균의 누이 허초희의 호를 따 이름 지었고 거북이 등에 올라탄 홍길동이 조각이 먼저 반긴다.
김종신
16세기 중반 조선에서 치른 임진왜란(전쟁)은 일본에서 그 주범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 죽고 도쿠카와(德川 幕府) 시대가 열리고, 중국에서는 1616년 여진족이 후금을 세웠다가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대륙을 장악하였다.
일본과 중국은 이 전쟁으로 왕조가 교체되었는데 막상 전쟁터가 되고 3국 가운데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조선왕조는 부패무능한 채로 왕권이 지속되고 있었다.
1392년 이성계가 이씨조선을 개국한지 꼭 200년 만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그로부터 303년 뒤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국권을 빼앗겼다.
300년 세월은 국정을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 사이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단행하여 근대국가로 변형하고, 청국은 130여 년 간의 강희ㆍ옹정ㆍ건륭제의 태평성대를 열었다. 조선은 영ㆍ정조의 탕평책과 개혁정책이 시도되었지만, 권력은 다시 수구파에게 장악되고 결국 경술국치에 이르고 말았다.
역사에 가정이란 '부질없음' 이라지만, 1617~8년경 허균의 주도로 역성혁명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여러가지 자료(사료)를 검토하면 그는 혁명을 시도했던 것 같다.
그가 역성혁명을 일으키려 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의 혁명 준비에 참여했던 황정필이
"균이 처음엔 의창군을 추대하려다가, 나중엔 스스로 왕이 되려했다"
고 자백했다. 이 자백이 허균을 죽이기 위해 이이첨 쪽에서 정치적으로 조작한 흔적이 있긴 하지만, 그가 역성혁명을 꾀하여 허씨 왕조를 세울 수도 있는 법이다. 이성계가 왕씨의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씨의 조선을 세웠듯이, 그때 정세로 보아서 허균이 이씨 조선을 무너뜨리고 허씨 왕조를 다시 세울 수도 있었던 것이다. 역성혁명을 의도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씨 왕조에게는 죄를 얻었을는지 모르지만, 오늘에 와서까지 허균을 죄인시할 필요는 없다. (주석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