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정시 비중' 확대 발표 이후 교사들도, 아이들도, 학부모들조차도 학종이 '임종을 맞았다'고 말한다.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정시의 비중이 늘린다고 했지만, 의미 있는 수치도 아닐뿐더러 사실상 서울 주요 대학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당장 소멸 위기에 직면한 대다수 지방대의 경우는 대입 전형을 두고 왈가왈부할 겨를이 없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단지, '교육부의 정시 비중' 확대 발표가 학교 현장에 끼친 영향이 매우 빠르고 엄청나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교사들도, 아이들도, 학부모들조차도 학종이 '임종을 맞았다'고 말한다.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설령 고교 학점제가 전면 시행된다고 해도 학종 식의 대입 전형으로 회귀하지는 못할 거라고 확언한다. 필수 공통 교과로 수험 과목을 축소하는 한이 있어도, 수능 방식의 일제식 시험을 치르게 될 거라고 말한다. 학교와 교사마다 평가 기준을 달리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학종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다. 지금 고1이 치르게 되는 2024학년도 대입에서는 자기소개서를 비롯해 수상 실적과 봉사활동, 독서 이력 등 비교과 영역의 활동은 전형 자료로 제공되지 않는다. 거칠게 말해서, 내신 '성적만' 남게 되는 것이다.
정성 평가라면 교과별 세부능력 특기사항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점수와 등급으로 환산되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성적으로만 선발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공정성이 의심되는 항목이면 죄다 반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쯤 되면 학종이라는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여론의 질타에 교육부가 잠시 움찔한 것일 뿐인데, 학교는 완벽하게 과거로 회귀했다. 고3에게 학종은 최상위권을 위한 학교의 '배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놓고 말하진 않아도, 학교는 그들에게 '학종은 학교가 신경 쓸 테니 수능 준비에 최선을 다하라'라는 신호를 준다.
학종을 준비한다는 건, 그만큼 선택지가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하위권 아이들은 학종에 미련이 없다. 학종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라면, 정시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학종과 수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와중에 비교과 영역의 활동은 존재 이유조차 사라졌다. 애초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진로탐색활동과 봉사활동, 자율 동아리 활동 등을 대입에 반영한다고 할 때부터 예견된 바다. 그러한 자발적인 활동조차 대입의 종속 변수가 돼버렸으니, 편법이 난무할 건 불 보듯 환한 일이었다.
그나마 고3과 고2는 덜한 편이다. 대학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기존의 방식대로 대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급격한 대입 제도의 변화로 수험생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용 시기를 사전에 공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대입 3년 예고제'가 도입됐다.
반면에 고1은 영락없는 옛 학력고사 세대로 전락했다. 선배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 없이, 곁눈질하지 않고 오로지 내신과 수능 준비만 한다. 대학 진학에 비교과 영역이 필요 없다는 걸 모르는 아이는 없다. 고1부터 수능 기출 문제집을 교과서 삼아 수업을 하는 교과가 적지 않다.
영악한 아이들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 않는데 교내의 다양한 활동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반문하기 일쑤다. 숫제 표창장도, 선행상도 개나 주라는 식이다. 교사들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수행평가도 이왕이면 대입에 도움이 되도록 설계한다. 기출 문제 풀이 위주라는 이야기다.
머지않아 수업 시간에 주야장천 문제집만 반복해서 푸는 모습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 설마 그러랴 싶지만, 수험 과목이 아닌 예체능과 진로 선택 교과의 경우에는 학력고사 시절처럼 자습 시간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 학종과 수능의 갈등 속에 애꿎은 학교만 큰 상처를 입었다.
학종이 만신창이가 된 이후의 고등학교 풍경은 스산하기 짝이 없다. 대입 제도 개선과 공교육 개혁의 요란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친 뒤의 잔해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교사들의 입에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고, 백약이 무효라는 열패감이 학교를 휘감고 있다.
교육부는 '학종이 졌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학교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학교가 이렇듯 빨리 반응할 줄은 몰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과거의 제도를 복원하고 있다. 학교 밖도 마찬가지다. 학종 대비 학원은 시나브로 문을 닫고, 발 빠르게 수능 학원 체제로 전환 중이다.
학종은 다양한 학교 활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도입됐다. 실제로 '자동봉진'(자율활동·동아리활동·봉사활동·진로활동)으로 불리는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종이 가져온 학교의 변화를 상징한다. 문제 풀이 수업이 학교 교육의 전부이다시피 했던 때, 학종은 말 그대로 공교육의 혁명적 변화를 이끌 대안으로 여겨졌다.
대입을 앞둔 고3만큼 수능 기출 문제집에 애면글면하는 고1 아이들을 보는 건 참담하다.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야만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은 족히 반세기도 더 된 진학 지도 방식이다. 수업이 문제 풀이고, 문제 풀이가 공부인 학교에서는 다른 것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다.
공부'만' 남은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