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 부모 모두 모신 수목장 가는 길

[박도의 치악산 일기] 조상의 음덕

등록 2021.05.10 11:04수정 2021.05.1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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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산 상공의 푸른 하늘
오대산 상공의 푸른 하늘박도
 
나는 오대산 월정사에 자주 간다. 내가 월정사를 알게 된 것은 대학시절 은사였던 조지훈(본명, 조동탁) 시인 때문이다. 그분은 일제강점기 젊은 날 그곳에서 지냈다는 말씀을 자주 했다.


이후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대학의 한 선배가 1965년 불교학생회 여름방학수련에 월정사에 갔다. 수련기간 중 상원사 법회에 갔다가 내려오는 도중 소나기를 만나 갑자기 불어난 급류로 조난당했다. 그런저런 연유로 월정사는 마음에 새겨진 곳이다. 

1990년대 초 나의 데뷔작인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를 집필하면서 작품의 첫 배경 장면을 오대산 가는 길로 정했다. 그런 뒤 현장 취재로 여러 차례 답사하기도 했다. 교사가 된 이후는 학생들의 수학여행 길에 그곳을 안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 오대산 월정사 앞 지장암 옆에 천연 수목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선산에 모신 조부모, 부모 네 분의 묘지를 굳이 그곳 수목장으로 천장했다. 그런 뒤 나도 그곳에 수목장을 해달라고 가족들에게 유언을 한 바 있다.

조상의 수목장을 한 이후는 해마다 7, 8차례씩 오대산을 다녔다. 조상님 기일, 추석 설날, 한식 무렵에 찾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작품 이후에도 주요 작품을 집필할 때는 아예 그곳 원주실의 배려로 명상관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나의 장편소설 <약속> <허형식 장군> <용서> 등은 그곳에서 썼다.

"불효자는 웁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다니던 가운데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사태로 한 번도 다니지 못했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고, 5월 10일은 어머니 96회 생신날이다. 그래서 9일 용기를 내서 진부행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가 출발하자 내 눈에서는 주책없이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나이가 들면 눈물도 흔해지는가? 아마도 부모님에 대한 불효 때문인가 보다. 나는 불효막심한 자식이었다.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볼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이 못난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월정사 천연 수목장
월정사 천연 수목장박도
 
조상의 음덕


다행히 진부행 시외버스는 승객이 텅 비어 있었기에 실컷 눈물을 흘리는 새 진부정류장에 닿았다. 월정사행 차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기에 진부 장터에서 요기를 했다. 그런 다음 군내 상원사행 버스를 타고 먼저 지장암 옆 수목장으로 가서 묵념을 드렸다.

"오랜만에 먼 걸음을 했구나. 이젠 네 나이도 수월찮을 건데 낙상한다. 앞으로는 오지 말거라. 우리들은 네 덕분으로 모두 오순도순 잘 지내고 있다."
"아범아, 이곳은 조용하고 공기도 좋고 아침저녁으로 범종소리도, 스님들의 독경도 들려서 아주 좋구나."
"너는 첫 돌도 못 넘길 줄 알았는데 그새 일흔을 넘었구나. 반갑다 내 손자."
 

할아버지, 아버지, 할머니가 차례로 반겨 맞았다. 말없던 어머니는 내 뒤를 따라오면서 그제야 작별인사를 했다.

"하산 길 조심해라. 인생 길도 마찬가지다. 이젠 네 뿔뚝 고집 피우지 말고 네 처나 아이들에게도 지고, 매사 순리대로 살아라. 네 형제들과 우애있게 살고."

오대천에서 어머니 영혼과 작별한 뒤 월정사 수광전에 가서 위패 앞에서, 적광전 부처님 앞에서 삼배를 드렸다. 돌아가는 차 시간에 돼 버스정류장에 이른 뒤 하늘을 바라보자 더 없이 맑은 5월의 푸른 하늘이었다.

일찍이 내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모처럼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한참이나 넋없이 바라보다가 막 도착한 진부행 버스에 올랐다. 진부정류장에서 잠시 머물다 원주행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지난 겨우내 쓰다가 덮어버린 작품을 다시 펼쳐 마무리해야겠다는 창작 의욕이 불끈 솟았다. 아마도 조상이 나에게 준 사랑의 음덕인가 보다.
#오대산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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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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