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는 ‘괘고정수(掛鼓亭樹)’ 북을 걸어놓은 정자나무라는 뜻이다
임영열
괘고정수란(掛鼓亭樹) 말 그대로 '북을 걸어 놓은 정자나무'라는 의미다. 이 나무는 조선 세종대 문신인 필문 이선제(李先齊, 1389~1454)가 심었다고 한다.
고려사와 태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한 이선제는 조선 초기 광주를 대표하는 문신이다. 이선제는 나무를 심으면서 "이 나무가 흥하면 가문이 흥하고 죽으면 가문이 쇠락할 것이니 각별히 잘 돌보라"라고 당부했다.
이선제의 아들인 시원과 형원이 과거에 합격했고 형원의 아들 달손, 달손의 아들 공인, 공인의 아들 중호, 중호의 아들 발과 길이 대를 이어 합격했다.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북을 걸어놓고 잔치를 벌였다.
5대손 이발이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멸문지화를 당하자 예언대로 버드나무도 말라죽기 시작했다. 300년이 지나고 이발이 신원되자 다시 새잎이 돋아나면서 나무가 살아났다. 마을 뒤쪽에 이선제를 기리는 부조묘와 후손들의 유적비가 서 있다.
선교사들의 향수를 달래준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광주의 예루살렘'이라 부르는 양림동은 1900년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하던 곳이다. 푸른 눈의 성자들은 이곳에 들어와 학교와 병원을 지어 근대 교육과 의료를 시행하며 선교에 나섰다.
양림동 곳곳에 이들의 흔적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이방의 성직자들이 살았던 우일선 선교사 사택과 수피아 여고에 있는 커티스 메모리얼 홀 사이에 사시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는 잎사귀에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있는 나무가 한 그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