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 어떤 질문을 던지겠습니까?

[서평] 책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를 읽고

등록 2021.05.20 15:05수정 2021.05.2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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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라는 책의 저자, 에디트 에바 에거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 심리치료사가 된 사람이라는 소개를 듣고 좀 부담스러웠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 힘든 고통의 시간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는 심리치료사가 되었다는 저자의 약력이 궁금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 위스덤 하우스

 

아우슈비츠로 보내진 16살 소녀 


1943년 16살 소녀 에디트는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보내진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슬로건으로 그들을 맞이한 수용소, 아버지는 '일만 조금하면 될 거야, 전쟁 끝날 때까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휘관 요제프 멩겔레는 아버지와 어머니, 외조부모님을 바로 가스실로 보낸다.

살아남은 에디트와 언니 마그다의 삶이 더 나은 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부모님을 가스실로 보낸 멩겔레 앞에서 한때 국가의 대표가 될 꿈에 부풀었던 소녀는 발레를 해야 했다. 마우트하우젠에서 군슈키르헨에 이르기까지 2000명의 사람들 중 단 100명만이 살아남은 여정에 내몰렸다.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었는지조차 구분하기 힘든 상황, 소녀는 시체 더미 사이에서 발견된다. 

겨우 열여섯 살, 부모님도 잃은 채 언니와 둘뿐이었지만, 소녀 에디트는 '디추커, 이것만 기억해. 네가 마음에 새간 것은 아무도 네게서 뺏을 수 없단다'라는 엄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며 자신을 지켜냈다.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해방된 수감자들은 강제수용소의 출입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수용소로 돌아와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실제 수용소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자유'를 얻은 에바, 그녀의 몸은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되었지만, 그녀 스스로 자신을 '아우슈비츠', '마음 감옥'에 가두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괴롭힌 건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괴로움이었다.

마음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다 

그녀는 19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공산주의 헝가리에서 다시 한번 유태인에 대한 탄압에 예고되자 남편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온다. 일용직 노동자로 시작된 미국에서의 삶, 그녀는 '생존'으로 자신을 덮는다. 
 
'우리는 우리의 진실과 이야기를 억지로 숨길 때 비밀들은 그것 자체로 트라우마가 되고 그것 자체로 감옥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 던져진 '화두'는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늘 다시 되돌아 온다고 한다. 자신을 억누르며 살았던 에디트는 아우슈비츠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며 애쓴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마음은 병들어갔다. 


자신을 지키며 홀로코스트를 견뎠지만, 녹록치 않은 인생은 끊임없이 에디트의 내면에서 질문을 솟아오르게 한다. 그건 '홀로코스트'라는 특별한 상황만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살아가며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삶의 미션들이었다. 

어린 시절를 돌아보며 에디트는 언니들이 자신을 보고 늘 '넌 너무 못생겼어, 넌 너무 못생겼어'라고 노래를 불렀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형제들에 비해 자존감이 낮았던 소녀는 그저 언니들이 부르는 노래를 마치 자신을 두고 부르는 것이라 '오해'했던 것이다. 또한 에디트는 그 시절 자신의 정체성이 부모님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측정하는 수단인 것 같다고 기억한다. 


소녀 에디트는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고 가족과 자신을 분리할 수 없었다. 소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도 전에 홀로코스트를 겪었고, 결혼을 했고 어머니가 되었다. 말도 서투른 이민자로서 세 아이들, 특히 발달 장애를 겪는 막내 아들까지 책임져야 해서 자신 안의 '미성숙한 에디트'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아니 외면했다. 

에거 박사가 된 에디트는 그래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병'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것은 '손상'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스런 삶과 단절한 누구라도 겪게 되는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출신이라는 걸 극도로 밝히기를 꺼려하던 에디트는 공황발작까지 겪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만나게 된 빅터 프랭클 박사, 자신과 같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지만 그 경험을 심리학적으로 승화시킨 그의  책을 통해 자신에게도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선택할 기회가 있음을 깨닫는다. 

에디트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자유를 찾아 나아가는 여정은 심리 치료사가 되어가는 여정임과 동시에, 그녀가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16살에 아우슈비츠에 갔던 소녀의 삶에 대한 복기이다. 

자신을 찾아온 환자를 치료함과 동시에, 그 환자를 통해 자신을 열어가는 것이다. 심리 치료사 본인이 마음으로 환자와의 공감을 함은 물론, 환자가 맞닦뜨린 상황을 온전히 자신의 미션으로 수용하는 과정이 된다. 고통에는 높낮이가 없다는 에디트의 신념은 환자를 치료함과 동시에 에디트의 자아를 한 단계씩 끌어올린다. 

책은 에디트와 언니 마그다, 그리고 엄마, 세 여성이 수용소에서 서로를 의지해 서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시에 총을 숨기고 그녀의 상담실에 찾아온 한 미군의 상담으로 맞물린다. 

이 이야기는 긴 여정을 통해서야 그 퍼즐이 풀린다. 그리고 그 퍼즐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건 온전한 '나'이다. 그리고 그 온전한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에디트는 때로는 수용자들이 그곳을 다녀와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는 '아우슈비츠'로 향한다. 

결국 그곳를 가서야 만나게 된 '에디트' 자신, 그건 어쩌면 자신 때문에 엄마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그저 과거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과정이다. 자신의 '의지'로서 어찌해 볼 수 없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일들을 자신의 '잘못'으로 오독하는 자기 비하의 함정을 넘어, 에디트는 진정한 '자유'를 향한다. 
 
'자유는 이미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에 놓여있다.
자유는 우리가 용기를 모아 감옥을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말이다.'

아우슈비츠로부터 70년, 에디트가 자신의 '마음 감옥'에서 온전히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이제 에디트는 '나는 왜 살았을까' 대신,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살아가며 가장 큰 절망과 마주하는 날,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책을 펼칠 것이다' , 이 추천사야말로 가장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홀로코스트 생존자라는 특별한 삶보다는, 불투명한 삶의 조건에 내던져질 수밖에 없는 실존적 인간의 모습에 주목하게 됐다. 그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단없이 행군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https://blog.naver.com/cucumberjh 에도 실립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내면의 빛을 보는 법에 대하여

에디트 에바 에거 (지은이), 안진희 (옮긴이),
위즈덤하우스, 2021


#<마음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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