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순 열사.
김동석 화가
집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는 늘 연세대 정문 맞은편 굴다리를 지나간다. 지하철을 이용해도 되지만 광화문을 향할 때면 홀로 굴다리 위에서 여인의 몸으로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분투하였을 39세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버스를 이용한다.
나는 어머니의 뜻을 헤아리고자 굴다리 철길 위에 20대, 30대, 40대의 내가 어머니의 모습으로 서 보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굴다리가 가까워올수록 심장이 조여 오고 두려움과 슬픔이 몰려온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라는 자리를 지켜내며 하루하루를 분투할수록 그 아픔도 깊이를 더한다.
신념(1991년작)
신념은 모든 미망을 지워준다
기름진 대지에 뿌려진 신념은
한 톨의 씨앗에 비할 수 있다
한 톨의 씨앗은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한 톨의 씨앗은
몇 만 톨의 같은 씨앗이 되는 것이다
신념은 연거푸 새로운 신념을 낳는다
신념에는 미망이 끼어들 틈이 없다
신념이 미망을 지워 버리는 것이다
연세대 정문 맞은편 굴다리 위 철길에서 몸을 던진 여성
1991년 5월 18일, 신군부 정권의 폭력으로 숨진 강경대 열사의 노제 행렬이 광주 북구 망월동 5.18묘역을 향해 연세대 정문을 나서던 순간, 정문 맞은편 굴다리 위 철길에서 짧은 구호 소리가 들렸고, 한 여인이 불이 붙은 채 8m 아래 도로에 떨어졌다.
그녀는 바로 옆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뒀다. 철길 옆 풀밭에 남겨진 체크무늬 여행 가방 속에서 유서와 가톨릭 기도문이 발견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나의 어머니, 이정순이었다.
그 당시 나는 14세 중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 수업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나를 데리러 오신 신부님을 따라 광주 5.18묘역에 묻혀 계신 어머니를 뵈었다.
형편상 어머니와 떨어져 지냈지만 때때로 4남매를 찾아오셔서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고, 예쁜 옷도 사서 보내주시고, 자녀들 담임선생님께 편지도 보내셨다. 가까이서 자녀를 챙기지 못한 어머니께서 그 당시 자녀를 위해 하실 수 있는 최선이셨을 것이다.
분신하시기 몇 주 전 목욕탕에서 자녀들의 묵은 때를 밀어주시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부고 소식. 친가를 위해 서울에서 같이 살자던 어머니의 제안을 거부했던 나로 인해 돌아가신 것 같았다. 그런 죄책감과 동시에 사랑했던 만큼 밀려오는 어머니 대한 배신감과 분노의 감정이 겹치면서 나는 표현할 수 없는 어두운 감정에 억눌린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내야 했다.
내 인생의 허허 벌판에(1988년작)
내 인생의 허허 벌판에
홀로 웅크리고 있노니
낮에는 햇볕이 지겹도록 쬐이고
밤은 무섭도록 길고
내 영혼 무엇과 있노라 말인가
하얀 백지에 무얼 그리려고
독립운동가 아버지, 여순사건 연루자 외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