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위에 서려면 고통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중국인이다 10

등록 2021.06.09 15:26수정 2021.06.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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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자리에 있는 사람의 덕은 바람과 같아서
아랫사람은 다 그 풍화(風化)를 입게 된다.
- 논어 안연편

 
천명에 의한 정치

맹자는 자신의 이상인 인의(仁義)에 의한 정치를 이 세상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아무런 보상도 없는 유세를 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맹자가 평생을 두고 발버둥친 것은 두 가지 목표였다. 그 첫째는 유학을 사상적으로 널리 펼치는 것이고, 둘째는 정치상에서 인의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 즉 세상에 유가의 이상을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일생을 통틀어 보면 정치 방면에 있어서의 그의 노력은 노력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사상 면에 있어서는 놀랄 만한 업적을 남겼다.
맹자는 인의에 의한 정치를 펼치려는 자의 도를 이렇게 제시한다.


하늘이 진실로 한 사람에게 커다란 임무를 내리려고 하면 필히 그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 몸을 괴롭게 하며, 그 체구를 말리며, 그 몸을 텅 비게 하는 것이니 그때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 맹자, 고자하편 (告子下篇)

 
옛날에 중국인들은 그것을 천명(天命)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면 예로부터 인물이라고 불리운 사람들은 누구나 젊었을 때 그러한 고뇌와 고생을 참고 견디어 온 듯하다.
  
폭정을 보다 못하고 한 젊은이가 분연히 일어서다


서경(書經) 중회지고(仲途之誥)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유하의 어두운 덕으로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有夏昏德 民墜塗炭)"


악정으로 이름난 하나라 걸왕의 폭정을 보다 못하고 한 젊은이가 분연히 일어서 새 왕조를 이룩했고 그것이 은나라 탕왕이다. 탕 임금은 포악무도한 걸왕 토벌의 대군이 출발하려고 할 때, 군중들 앞에서 탕서(湯誓)라고 일컫는 맹세의 말을 외었다. 그러자 탕왕의 부하 가운데 중회라는 사람이 있어, 글을 지어 탕왕을 위로한 것이 유명한 중회지고(仲途之誥)다.

이 글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나라 걸 임금은 어둡고 덕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진흙과 숯불 속에 떨어진 것 같은 괴로움을 겪었다."

이것이 도탄에 빠지다, 라는 도탄지고(塗炭之苦)의 유래다. 도(塗)는 진흙이라는 뜻이고, 탄(炭)은 숯불을 뜻한다. 이를테면 수화(水火)의 고통이라는 뜻으로서, 오늘날 심한 민생고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하 왕조 마지막 천자 걸왕은 은나라 주왕과 더불어 대표적인 폭군으로서 '걸주(桀紂)'라고 함께 불리기도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폭군은 아니었다.

그 걸왕을 그르친 것은 매희(妹喜)라고 하는 미녀였다. 매희에게 사랑에 빠진 걸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한껏 호사를 부려 음락에 골몰하고 국정을 돌보지 않았으므로, 국력은 퇴폐하고 인심은 하왕조를 떠나 마침내 은나라 탕왕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렇게 전한다.

걸왕 때 하나라의 국세는 이미 쇠약하여 많은 제후가 떨어져 나갔다. 걸왕은 부도덕하였고, 현신(賢臣) 관용봉과 이윤의 간언을 듣지 않았으며, 백성을 억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덕군자로 알려졌던 은나라의 탕왕을 하대(夏臺)에서 체포하는 등 폭정을 자행하였다. 그가 탕왕의 토벌을 받고 도망가다가 죽음으로써 하나라는 멸망했다.
  
하늘의 명을 받드는 것이 정치다

그러나 탕왕은 무력으로 왕위를 차지한 것을 늘 괴롭게 여기고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구실 삼을까 염려하였다. 중회는 이러한 탕왕의 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아뢰어 그를 격려했다.

"하늘은 총명한 이를 내셔서 이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라 임금은 덕에 어두워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으니(民墜塗炭), 하늘은 이에 임금님께 용기와 지혜를 내리시어, 온 나라의 의표가 되어 바로 다스리게 하시어, 우임금의 옛 일을 계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분의 법을 따라서 하늘의 명을 받드시는 것입니다."

서경 탕서(湯誓)에는 하나라의 폭군 걸왕을 정벌하려는 탕왕의 맹서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감히 난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오. 하나라의 임금이 죄가 많아 하늘이 명하시니 그를 치려는 것이오. 나는 하늘을 두려워하니 감히 바로잡지 않을 수 없소. 하나라 임금은 백성들의 힘을 빠지게 하고, 하나라 고을을 해치게만 하였소. 바라건대 나를 도와 하늘의 법이 이루어지도록 하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니, 여러분들은 믿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爾無不信). 나는 약속을 지킬 것이오(朕不食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처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제시한다. 여기서 식언(食言)이란 '밥이 뱃속에서 소화되어 버리듯 약속을 슬그머니 넘겨 버리는 것이니, 이는 곧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거짓을 말함'을 뜻한다. 

그가 걸왕을 멸한 행위는 유교에서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토벌한 일과 함께, 올바른 '혁명'이자 시의적절한 군사행동이라 평하고 있다. 

인의의 정치를 주창한 맹자도 이렇게 말했다.

걸주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인민을 잃은 까닭이다. 그 인민을 잃은 것은 그 민심을 잃은 까닭이다. 천하를 얻는 데는 방법이 있다. 그 인민을 얻으면 곧 천하를 얻을 수 있다. 그 인민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다. 그 민심을 얻으면 곧 인민을 얻을 수 있다. 그 민심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다. 인민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모아다 주고 인민이 싫어하는 것을 베풀지 않도록 할 뿐이다.

한편, 탕왕은 온후하고 관대한 왕으로 칭송받는 그는 가뭄이 들자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제사가 끝나기도 전에 비가 내렸고 탕은 목숨을 건졌다.

탕왕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덕을 첫째로 꼽았다.

"사람은 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고 군왕은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나라가 잘 다스려 지는지를 안다. 그렇지 않은가?"

탕왕의 질문에 신하 이윤이 대답했다.

"덕행에 밝으신 말씀입니다. 군주로서 백성을 자식과 같이 생각하고 사랑하시면 선정(善政)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이 모두 자진해서 관직에 오르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윤도 탕왕의 덕치에 반해서 스스로 탕왕을 찾아 나선 자였다. 이렇듯 윗사람 된 자는 자신의 충정을 다 바쳐서 아랫사람을 다스림이 천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중국인들은 믿고 있다.

전철을 밟다

그러나 탕왕을 시조로 하는 은나라 왕조도 그로부터 육백여 년 후에 주왕에 이르러 망해 버린다. 주왕도 지력(智力)이며 무용이 다 뛰어난 왕이었지만, 그에게 길을 잘못 들게 한 것은 역시 여성이고 독부로서 이름난 달기였다. 달기의 미색에 미친 주왕은 주지육림의 놀이를 하여 걸왕과 마찬가지로 인심을 잃는다.

이 때 서백이 주왕에게 간한 유명한 말이 또 있다.

"은감(殷鑑)은 멀지 않고, 하후(夏后)의 시대에 있습니다."

이 글은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에 나와 있는 데, '은나라 왕의 거울이 될 전례는 아직 멀지 않은 하나라, 걸왕 때에 얻어 볼 수 있다.' 는 뜻으로 남의 실패를 자신에 대한 경계로 삼으라는 은감불원(殷鑑不遠)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인간사는 돌고 도는 것이고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인가?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란 활쏘기는 군자의 태도와 유사한 점에 있다. 정곡(正鵠)을 맞히지 못하면 돌이켜 그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20세기의 석학이자 작가인 카네티는 권력의 이러한 속성을 이렇게 분석했다.


진짜 권력을 쥔 자의 본래의 의도는 '유일한 자'가 되려는 괴상하고도 잘 믿어지지 않는 면에 있다. 그가 모든 사람들보다 오래 살아남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보다 오래 살아남지를 못한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죽음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그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든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는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적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는 호위병조차도 그에게 덤비어들 수 있다. 그가 항상 내심으론 자기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항상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E.카네티, 말의 양심


그러한 독단과 두려움을 없애고 진정한 대의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은 중용의 말에서 찾고 싶다.

윗자리에 있어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 윗사람을 비방하지 않는다. 자신을 바로잡고 남에게 구하지 아니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없나니 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아니하며 아래로 남을 허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평탄에 처하여 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에 행하여 행(幸)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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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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