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전해들은 6.25 전쟁 이야기

등록 2021.06.25 13:41수정 2021.06.2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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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71주년이 되었다. 그간 조부모님과 부모님 세대에게 들은 것으로 전쟁이 일어났음을 알 수는 있었지만 체감할 수는 없었다. 내용에 공감이 많이 가지 않았다.


20대인 딸아이는 외할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직접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전해들은 이야기를 해주면 전혀 현실에 있었던 이야기 같지 않고 지어낸 이야기 같다고 했다. 20대에게는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전쟁이라는 말은 현실 용어라기 보다 온라인게임에서 나오는 가상세계의 용어 같다는 것이다. 

오늘 6.25를 맞이하며 어렸을 적에 아버지에게 들었던 전쟁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날 우리 동네는 토끼가 발맞추는 곳이라고 놀림을 당할 정도였다. 용안면 법성리는 사람들이 흔히 '깡촌'이라고 부르는 아주 시골이었다.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뉘어 있는데 아랫동네는 금강의 갯벌을 메워서 마을이 생겼다고 했다.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곳이어서 교통수단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전기 대신 호롱불을 사용했고 어디든지 걸어서 가야했다. 달구지를 이용해서 물품 운반을 하는 건 부잣집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옛날 시골마을 아버지의 집엔 안채와 사랑채, 곳간, 우물, 닭장, 돼지우리, 소 외양간이 있었다. 앞마당에는 우물과 헛간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곳간이 있었다. 안방에 있어서 주로 사용하는 부엌과 사랑채에 있는 아궁이, 작은 방에 붙어 있는 방을 데울 때 쓰는 아궁이까지 불을 지필 수 있는 부뚜막이 세 개 있었다.

안방 부엌은 뒷마당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고, 문을 열면 장독대와 함께 왼쪽 옆으로 음식물을 저장하는 지하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가족들은 이곳에 숨어서 지냈다고 했다. 그곳에는 곡식을 저장하는 곳이라서 다행히 먹을 것이 있어서 굶지는 않았다고 했다.


뒷마당에는 장독대와 감나무가 있는 둔덕이 있었다. 둔덕 뒤에는 대나무 밭이 있었고, 대나무 밭 너머로는 산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가면 뒷산으로 이어져 있었고, 뒷산에는 산짐승들이 살았다.

전쟁이 발발했던 해 7월 여름에 전주와 광주가 점령당하면서 아버지가 살았던 용안면 법성리 우리 마을까지 인민군이 들어왔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고 바로 밑의 남동생(작은아버지)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삼촌은 군대에 가서 전쟁을 마주했고,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전사했다.


조용했던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공포심에 떨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 몸을 숨겼고 아버지의 집은 마을에 들어온 인민군에게 빼앗겼다고 했다. 인민군은 낮에는 나갔다가 점심 때 밥을 먹고 다시 나갔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마을에 있는 돼지와 닭을 잡아서 먹고, 밭에 있는 채소로 반찬을 하고 곳간에 있는 곡식으로 밥을 지어 거하게 차려먹었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가축들은 숫자가 줄어들었고, 곳간은 서서히 비워졌다.

전쟁에 징용되어 내려온 인민군의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고 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들은 전쟁이라는 슬픈 역사 속에 서 있었다. 그 시절에는 선택하지 않았지만 전쟁터에 나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작은할아버지들이 있었다. 자신이 선택해서 타국 월남전에 참전했던 그 시대 작은아버지들이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마당을 점령한 채 지냈을지 모르는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마을에 정적이 흘렀다. 조심스럽게 조용해진 뒷마당으로 나와 보니 모두가 떠나고 전쟁터 같은 쓰레기들만 가득했었다고 했다. 마을에 가득했던 인민군들의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전쟁이 끝났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동굴에서 나올 수 있었고, 마을사람들은 한두 명씩 산에서 내려왔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가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졌다. 한강을 시키던 방어선이 3일 만에 무너져서 6월 27일에 서울은 점령당했다. 7월에는 전주와 광주가 점령당했고 8월에는 부산 일대와 제주도만 남겨놓은 채 전 국토를 점령당했다.

그렇게 전쟁은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되고 8월 15일이 될 때까지 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리나라 땅에서 벌어졌고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 총에 맞아 죽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고, 추위에 몸을 피할 곳이 없어 얼어 죽고 전쟁에 나가서 죽고 또 죽고 죽어갔다.

6월의 아픔을 기억하며, 전쟁에 나가 돌아가신 수많은 작은할아버지들과, 증조할머니처럼 아들을 잃고 형제, 부모, 친척을 잃은 분들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추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sns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6.25전쟁 #피난민 #호국영령추모 #기억하자 #추모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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