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쓰고 동물원 구경
류정화
인파를 벗어나 탁 트인 잔디밭 광장에 다다라서야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부터 광장을 메우고 있는 가족 몇 팀을 지나서 빈자리를 찾았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아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돗자리를 펼쳤더니 아이가 귀퉁이에 슬며시 걸터앉았다. 아내와 나도 돗자리에 앉아서 마스크를 벗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따스한 햇볕에 몸을 맡겼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일상의 즐거움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코로나 공포가 빼앗아간 소중한 보물을 가까스로 되찾은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 이대로 즐겨도 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불쑥 밀려오는 걸 애써 밀어내고 모처럼 나온 피크닉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돗자리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놀라서 돌아보니 여자아이 서너 명이 광장 근처 까마귀를 쫓아다니며 소리치고 있었다. 음식 부스러기를 먹으려고 날아드는 까마귀와 소녀들의 추격전은 아주 실감 났다. 우리 아이도 저 소녀들처럼 긴장을 확 풀고 뛰어놀았으면 좋으련만.
겁먹은 아이 달래주기
엄마 곁에 딱 붙어서, 아이는 무릎을 끌어안고 근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도 어릴 때 무서워서 바깥에 못 나갔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겁 많고 내성적인 나를 심부름이라도 자주 밖에 내보내면 성격도 활달하게 바뀔 거라고 믿었었다. 그날도 내키지 않았지만, 엄마의 뜻대로 나갔다가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고 나는 어두운 공터에 꼭꼭 숨고 말았다. 결국, 온 동네 사람들이 나를 찾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억지로 밖으로만 끌고 나온다고 아이의 겁이 저절로 사라질 리 없다. 준비가 덜 된 아이한테 변화를 강요하면 역효과를 가져올 거라는 걸 나는 스스로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간절한 희망과 달리 그 사건 이후에도 나는 두려움을 쉽게 극복하지 못했다.
재작년에 동물원에 왔을 때만 해도 저 아이들처럼 소리치며 뛰어다니던 아이가 지금은 너무 얌전해서 안타까웠다. 웅크린 아이를 꾀어서 조금만 걷자고 했다. 기지개도 한 번 켜고 마스크도 고쳐 쓰고 잔디 광장에서 술래잡기 했더니 녀석은 금세 신났다. 아이가 한동안 뛰어놀다가 멈춰서 어디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무엇 때문이냐고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했다.
아이가 흘깃 쳐다보는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광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천막 하나가 보였다.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아이는 이번에도 아니라고 딱 잡아뗐다. 밖에서 사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쿠키 아이스크림을 사주자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한테 물었다.
"동물원에 오니까 좋아?"
"응, 좋아"
"다음에 또 올까?"
"아니"
"왜?"
"너무 덥고 땀나서 싫어. 에어컨이 빵빵한 수족관에 갈래요."
"하하하."
두려움과 불안함에 떠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한 피크닉이었지만 예상했던 거보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 바깥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코로나 이전의 정상 생활로 돌아가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다고 코로나의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안 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달라진 현실에 맞게 아이가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부모의 도리다.
어른한테도 힘든 코로나 격변기의 현실 적응 훈련을 아이한테 무리하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불안에 떠는 아이의 마음부터 달래주면서 아이가 스스로 극복할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줄 생각이다. 방학을 맞아 이런 바깥출입 연습이라도 자주 해보려고 한다. 피크닉이 그 시작이었다. 안전한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찾아서 도전해봐야겠다. 함께 공원도 가고, 식물원도 가고, 다른 장소도 찾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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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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