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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민과 함께 즐기려고 화단을 가꾸는 아내

주민 민원으로 철거된 화단, 올해부터 다시 가꿀 수 있게 됐어요

등록 2021.06.29 14:52수정 2021.06.2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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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2년을 가꿔온 아파트 화단 꽃밭이 작년 가을 주민 한 분의 민원으로 정리가 됐다. 민원을 넣은 주민은 1층에 사는 분이다. 그 주민은 아마도 자신의 뒷 베란다 화단에 피어나는 예쁜 야생초들로 아파트 주민들이 오며 가며 주는 시선들이 싫었던 것 같다. 특별히 다른 이유라고 할 만한 게 있을 수 없었다.


아내가 가장 공을 들였던 2년간의 화단. 지난가을 관리실에서는 민원이 들어온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어쩔 수 없이 아내는 피어있는 꽃들이 지면 직접 정리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아내는 자신의 손으로 아파트 화단의 꽃들을 가을이 지나서 정리했다. 다 잘려나가고, 뿌리째 뽑혀나간 화단을 보며 상심했던 아내를 보는 게 당시에는 안타까웠고, 마음 아팠다.

하지만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올해 초 아파트 관리업체가 바뀌면서 아내는 다시 한번 화단 꽃밭을 꾸밀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난 3월 초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간 관리사무소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새로 들어온 업체의 관리소장님도 아내와 비슷한 생각들을 갖고 있었고, 아내가 꽃을 심고, 가꾸는 활동을 적극 찬성했다. 정식 민원이 들어오더라도 아주 정당한 사유가 아닌 개인적인 단순 불만인 이상은 관리소 차원의 활동으로 무마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화단에 핀 야생화1 아내가 열심히 키운 예쁜 꽃이에요
화단에 핀 야생화1아내가 열심히 키운 예쁜 꽃이에요정지현
 
그렇게 다시 시작된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아내의 아파트 화단을 가꾸는 일은 하루하루 땀을 흘리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자신의 취미 활동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꽃밭을 만들어 많은 입주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외출로 나가거나, 들어올 때 항상 반갑게 마주하는 꽃들을 볼 수 있게 올 한 해도 예쁘게 꾸몄다.

처음 우리에게 인사한 건 보라색 빛이 예쁜 '매발톱'이었다. 다른 꽃들이 봉오리를 맺기 전에 꽃밭에 결실을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 영롱한 자태를 보였다. 그렇게 한 동안 보랏빛을 즐기던 우리에게 찾아온 다음 녀석들은 그 화려한 빛깔만 해도 가는 발길을 자연스레 붙잡는 '꽃 양귀비'.

많은 분들이 그 붉은빛이 너무 고와 한참을 머물게 했던 녀석이다. '양귀비'가 강렬한 붉은빛이라면, 동심이 생각나는 노란 빛깔로 사람을 웃게 만드는 '루드베키아'까지 활짝 고개를 들었다. 최근에는 아내의 올봄 회심작인 '애키네시아'가 큰 키에 어울리는 크고, 많은 꽃을 보여주며 아내의 화단을 더욱더 빛내고 있다.
 
화단의 꽃2 아내가 정성드려서 키운 꽃
화단의 꽃2아내가 정성드려서 키운 꽃정지현
 
이런 아내의 부지런함이 때때로 내게는 고된 노동을 불러오지만 그래도 올봄에는 비도 많이 와서 물을 나를 일이 예년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아 조금은 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기 전까지 아내는 화단에 나가 손을 놀리지 않았고, 호미질과 가위질을 쉬지 않았다. 아내는 꽃밭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주민들을 보며 항상 흐뭇해한다.


아내가 아파트 화단에 쏟아낸 땀과 크지는 않지만 들인 돈이 아깝지 않다는 것도 아내가 가꾼 화단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주민들과 함께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늘 말하곤 한다.

이런 아내 마음을 아시는지 일하는 아내를 마주하는 주민들은 늘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한다. 다행히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도 작년 경작금지를 붙이며 민원을 제기했던 1층 주민도 특별히 반응이 없으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이제 여름이 지나면서 또 한 번 계절에 맞는 꽃들이 바뀌며 아내의 화단은 새로운 옷들을 갈아입을 것이다. 번번이 느끼는 일이지만 '진심은 닿는다'는 말은 진리인 듯하다. 아파트 화단 꽃밭을 꾸미는 일은 단순히 아내의 사심이 아닌 함께 즐기기에서 시작되었고, 이런 아내의 노력은 많은 분들의 응원과 감사로 다시 꽃을 피웠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꽃밭을 보고 지나다니며 잠시 머물렀던 발길, 깊은 관심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키운 꽃밭에 흔적으로 남아 꽃들이 더 예쁜 자태를 보이는 것 같다. 사람도 꽃도 관심을 가지고 봐주면 더 힘이 나는 건 마찬가지니까.

아내는 작년 직접 파종한 씨앗을 아파트 관리실 경비 아저씨에게 분양했다. 일부러 꽃씨를 사서 키우기는 아쉬웠던 아저씨는 아내가 직접 파종한 씨를 아파트 이곳, 저곳에 뿌려 올해 꽃을 피우고 있다.

아래 사진에 있는 해바라기나 황화 코스모스는 아파트 입구 화분에 심어져 지난주에 꽃을 보였다. 집으로 들어오는 후문 입구에서 아파트 주민을 활짝 반기는 자태가 오늘도 곱다. 아마 아내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태를 볼 때마다 다 자란 자식 보는 것 같이 뿌듯한 마음이지 싶다.

오늘 오후에도 아내는 두 손이 바쁘다. 곧 다가올 장마에 대비해서 꽃들에게 지지대를 세워주는 아내는 뙤약볕에서 오늘도 열심이다. 따라 나가 조용히 아내를 도와주다가 사진을 찍어봤다. 꽃들과 대화하는 지금이 아내가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일 듯싶다.
 
아파트 후문 도로길 화단 아내가 아파트 입구에도 꽃을 키웠어요
아파트 후문 도로길 화단아내가 아파트 입구에도 꽃을 키웠어요정지현
 
후문 입구 도로 옆 화단 꽃 농사는 작년에는 꽃들을 뽑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많이 아쉬웠는데, 올해는 메리골드 한 가지 씨앗만 뿌렸더니 더 볼만해졌다. 줄줄이 줄 맞혀서 예쁘게 핀 형형색색 꽃들이 길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을 더 기분 좋게 하는 것 같다.  

경작금지! 아이러니하게도 아내의 꽃밭 한쪽에는 아직도 푯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푯말은 조금씩 조금씩 외롭게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 쓸모를 다한 것을 아는 것처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아내 #화단 #꽃 #주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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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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