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를 먹는 아이의 모습아기는 자두를 좋아한다.
최원석
하지만 이 놀이이자 교육은 보시는 것처럼 '대환장파티'이다. 아기의 목욕과 바닥을 청소해야 하는 지난하고도 험난한 과정이 예약되어 있다. 제철 과일을 아기에게 주게 되면서 비로소 시작된 무한의 악몽이지만 부부에게는 아직 즐거운(?) 일이다.
아내와 나는 아침에 배웅 인사로 오늘의 과일을 선정한다. 고백했듯 선정한 과일이 필자의 퇴근길의 두 손에 들려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부부 판단 기준에 부합하는 녀석들이 있어야 비로소 아기 식탁에 올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6월부터 아기는 다양한 제철 과일을 만났다. 필자는 아기를 키우고 나서야 이제껏 살면서 과일 가게에 가 본 것보다 더 많이 드나들었던 것 같다. 항상 과일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제철 과일이면서 최대한 익어야 하고 그럼에도 하필 여름이라 날파리가 꼬이지 않을 만큼 신선해야 하니 과일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 수밖에.
아기가 8개월을 맞는 여름인 7월, 과일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아기도 서서히 자신의 취향을 어필하기 시작해서 조금씩 그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슬픈 사실은 '안 비밀'이다.
요리를 공부하고 가르쳤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요즈음을 필자가 보내고 있음을 고백한다. 바로 제철 과일이 이렇게나 다양하게 존재하며 진화하고 있음을 망각하고 있음을 이제 와 새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신비 복숭아, 샤인 머스캣, 자두, 살구, 멜론, 수박, 귤, 블루베리, 참외...
아기의 식탁에 오른 과일들의 면면이다. 글로 적고 보니 가짓수가 꽤 된다 싶다. 열거하고 보니 괜스레 갑자기 '고생했다'라는 자기 위로와 함께 피곤함이 몰려오는 듯도 하다. 아기에 대한 아빠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까? 아니었다면 매일 같이 퇴근길에 과일 집을 드나들지는 못했을 것 같다.
퇴근길에 자주 들르는 과일 집이 서너 곳 있는데, 한 곳은 터미널 근처의 청년들이 하는 집이다. 이곳은 청년들의 패기를 보여주듯 특이한 과일들이 있어서 자주 찾는다. 위에 열거한 신비 복숭아가 대표적인 예인데, 복숭아를 잘 먹길래 좋은 복숭아를 찾았더니 청년들이 권한 것이었다.
6월 제철 과일이며 2~3주밖에 출하가 되지 않아서 비싸지만 털이 없고 맛과 향이 특별하다고 해서 고민 끝에 구입했다. 아기와 함께 먹어보니 맛은 백도에 가깝고 향은 매우 좋았다. 한 입 베어 물면 향이 더 진하게 퍼졌다. 다행히 아기도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