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 정하상 바오로약현성당으로 오르는 14처 동산 중간에 서 있는 성 정하상 바오로 동상이다. 품에 '상재상서'를 안고 있다.
이영천
성당으로 들어서는 14처 동산을 오르다 보면, 한복을 입고 '상재상서(上宰相書)를 품은 성(聖) 정하상 바오로' 동상이 반긴다. 1831년 9월 로마 교황은 가톨릭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조선교구와 선교를 파리외방전교회에 맡긴다.
이 회는 울트라몬타니즘(Ultramontanism, 로마 교황의 권위가 국민적 주교단이나 세속 국가권력보다 높다는 점을 강조)을 따르는 '반 예수회'식 선교를 선호하는 단체다. 원리주의에 입각하여 선교지 전통이나 관습, 정치세력과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순교'를 각오한 선교 방식을 취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회'식 토착적 신앙변증을 수행한 신도가 바로 정하상이다.
정하상과 상재상서
새로운 사상을 수용하려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가치관과 이념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런 변화가 딱딱하게 굳은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힘이다. 이의 수용과 실천은 전혀 다른 길을 찾아내는 빛이기도 하다. 물론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경우는 다반사다.
조선 상류층 명문가이면서, 실학과 가톨릭을 받아들인 집안이 있다. 이들은 성리학이란 관념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조선에 변화를 일으키고, 실사구시를 학문과 실천, 순교로 변증한다.
자생적 가톨릭 신서파(信西派)의 핵심인 정약전(丁若銓)·약종(若鍾)·약용(若鏞) 3형제와 그 후손들이다. 집안은 남인 시파(時派)다. 약전은 토착적인 찬송 '십계명가'를 지었고, 약용은 수원화성을 설계할 정도로 뛰어난 실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