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논쟁을 자처한 것도 이 대표였다. 이 대표는 전날(27일)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처리에 대해 "노무현 정신과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재명 지사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언론 다양성 보장과 가짜뉴스 차단은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고, 가짜뉴스를 보호하는 것이 노무현 정신이라 할 수 없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 헌법도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자유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가짜뉴스에 관용을 베풀기엔 그동안 국민이 입은 피해가 너무 큽니다. 국민의힘 전신 정당이 집권하던 시절, 세월호의 진실은 가짜뉴스에 묻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도 가짜뉴스의 영향이 있습니다. 엉뚱한 논리로 노무현 정신을 훼손하지 않길 바랍니다. 언론사 징벌적손해배상제가 노무현 정신입니다."
- 27일 이재명 지사 페이스북 글 중 일부
가만있을 이 대표가 아니었다. 28일 CBS 라디오에 출연한 이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이재명 지사가 무슨 관점에서 호도하지 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노무현 대통령 언론개혁의 일면을 이렇게 정의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과거 보수 언론에서 본인에 대해서 공격이 많다 생각하시고, 다만 그들에 대해서 초기에 너무 징벌적으로 나가거나 이런 법을 만들기보다는, 그러면 또 다른 관점에서 보도할 수 있는 언론매체를 많이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 신문 같은 것들이 대거 출현한 겁니다."
이어 이 대표는 "(다수의 언론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관점을 통해서 (국민들이) 자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다소 자유주의적 관점에서의 해법"이었다며 "지금은 조금이라도 틀린 말 하면 다 징벌하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다 기억하시겠지만"이라고 운을 뗐지만 이 대표의 기억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자유주의적 관점'이란 전제부터 틀렸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시기 언론개혁을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이라 받아들였다. 임기 시작부터 인격적인 모욕까지 서슴지 않는 보수언론은 물론 앞서 소개한 대로 집권 말기엔 <'5共의 악몽'이 떠오른다>(2007년 5월 23일 자 <경향신문>)는 마타도어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니까, 그 '자유주의적 관점'이란 것이 임기 내내 소위 '레거시 미디어'의 공격에 난타를 당했던 노 전 대통령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방패막이었다는 얘기다. 앞서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들의 성명을 언급한 것도 그래서다.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제도를 도입할 국회 내 아군도 소수였다. DJP 연합으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가 밀어붙인 '언론사 세무조사'를 강행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철학 자체가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도 "내가 대통령으로서 개혁하려 한 것은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관계였다. 나는 언론권력과의 유착을 단절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아울러 "나는 그 싸움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무기로 쓰지 않았다"는 문장에서도 볼 수 있듯, '언론 탄압'과도, '언론 길들이기'와도 거리가 멀었다. '5공의 악몽'과는 비할 데가 아니었다.
그렇게 노 전 대통령은 권력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았다. 언론과 건강하게 토론하고 적당하게 긴장하고 갈등하길 바랐을 뿐이었다. 그 결과가 임기 후까지 이어진 끝날 줄 모르는 언론의 공격이었고, '논두렁 시계' 보도였다. 노 전 대통령이 맞은 비극의 책임에서 우리 언론은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 관점은 틀렸다
자유주의적 관점? 노 전 대통령이 벌인 언론과의 전쟁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그런 표현은 삼가시길. '노무현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를 죽음으로 내몬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 언론들의 관심과 수혜 속에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이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의 언론관을, 언론개혁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 대표가 틀린 것은 또 있었다.
"언론의 보도라는 것은 항상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신속성과 정확성과 그리고 적절함, 다 보고 하는 거라고 보는데. 거기서 정확성에 대해서 극한을 요구한다라고 하는 것은, 저는 거꾸로 자신감 없으면 나 건드리지 마 이런 자세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 대표의 해당 인터뷰 중)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여당이 입법 시도 중인 '언론중재법'을 반대할 순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신' 운운하며 사실마저 호도해선 안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여타 관련 법안들도 '정확성의 극한'을 요구하지 않는다.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왜곡 보도나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오보 등에 기존보다 더 강력한 제제 수단을 마련, 피해를 예방하자는 여당의 의도 자체를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정확성의 극한'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2007년 언론재단의 기자 의식 조사에 따르면, '언론자유를 제한한 요인들'은 광고주(61.0%), 편집·보도국 간부(51.2%), 자기검열 및 조직 내적 구조(42.2%), 사주·사장(40.3%) 순이었고, 정부·정치권력의 비중은 고작 34.3%였다. 독자들의 기사 소비 구조만 포털 및 소셜 미디어 등으로 바뀌었을 뿐 언론 신뢰도를 둘러싼 구조적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극한이 아니다. 우리 주류 언론이 백번 양보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정확성을 보여줬더라면, 국민들의 '언론 신뢰도'가 이렇게 바닥을 치진 않았을 것이다. '언론개혁'을 향한 적지 않은 국민들의 지지는 언론 스스로 자처했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보수야당 정치인들의 '노무현 정신' 운운이 특히 늘었다. 어쩔 수 없다. 망자는 말이 없으니. 그럼에도 언론개혁을 호도하는 일은 삼가시기를. 우호적인 언론 환경을 누릴 때로 누리는 이 대표가 참여정부의 언론개혁을, 그 노무현 정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를 '호도'로 여길 이들이 이 대표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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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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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언론개혁' 소환한 이준석, 그 관점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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