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전시장에서는 대전역 물자 수송에 투입된 6.25참전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증기기관차 '미카3-219호'와는 다르게 ‘미카-129호’를 전시해 놓고 있다.
우희철
국립대전현충원에는 호국철도기념관이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철도 종사자로서 당시 교통부의 비상 동원령에 따라 피란민, 병력·군수물자 수송이라는 임무로 6.25 전쟁에 참전한 분들은 약 1만9300명이며, 이 중 287명이 전사했다. 1899년 철도 개통 이래 지금까지 공무수행 중 순직한 사람만 2500여 명이다. 호국철도기념관은 철도인 영령의 넋을 추모하고 국민의 발이 되어 달려온 철도 역사를 알리기 위해 건립됐다.
야외전시장에는 6.25 참전 증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또 분단되기 전 신의주와 부산을 오가던 3등 객차도 볼 수 있다. 신의주-부산 푯말을 보면 하루빨리 완행열차라도 타고 신의주까지 가보고 싶어진다. 호국관은 기관차 바로 뒤에 있는 객차다. 왼편에는 한국전쟁 757일간의 기록이 있고 오른편에는 대표적인 참전 영웅을 소개하고 있다. 참전 영웅의 중심은 6.25전쟁 당시 순직한 김재현 기관사다.
'명예로운 철도인'에는 박기종, 이봉창, 장철희가 소개돼 있다. 박기종은 구한말 우리 손으로 직접 철도를 건설할 것을 주장하며 한국 최초 민간철도회사인 '부하철도회사'를 창설했다. 또 '대한철도회사'도 설립했다. 삼랑진과 마산을 연결하는 삼마철도 부설권을 얻어 공사를 시도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실패했다.
이봉창 열사는 용산역 철도회사에 견습생으로 시작해 시용부-역부-전철수-연결수까지 역임했다. 하지만 사직하고 상해로 건너가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일왕 히로히토를 겨냥해 수류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실행했다. 그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했다. 장철희 이병은 철도 동호인으로 활동하다 입대 6개월 만에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숨졌다.
전시실에서는 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시대별 열차의 속도도 볼 수 있다. 증기기관차인 해방자호는 시속 70km(1946년), 통일호는 80km, 무궁화호 85km, 새마을호 135km, KTX는 300km라고 한다. 70여 년 동안 5배 가까운 속도의 변이가 느껴진다. 단, 2021년 8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내부 전시실은 운영되지 않는다.
참전 영웅 중심에 있는 김재현 기관사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북한군이 대전을 점령하자 철도원 신분으로 작전에 투입됐다. 그는 1950년 7월 20일 황남호, 현재영 기관 보조와 함께 미군을 도와 '군수 물자 후송 작전'에 참여했다.
대전의 충남도청에서 윌리엄 F. 딘 소장은 대전역에 남아 있던 보급품을 실은 화차 10량을 영동역으로 운송할 기관차를 보내라고 명령하였다. 영동역에 있던 대전운전사무소 소속 김재현 기관사, 현재영 기관보조, 황남호 부기관사가 명령에 따라 이원역에서 열차를 몰고 군수물자를 싣고자 미군과 함께 대전역으로 달렸고 다시 옥천으로 되돌아오다 세천 터널 부근에서 북한군 총탄에 피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