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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만나 단비 같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노동공제 ④] 노동조합을 해야 할 이유, 봉제인공제회에서 찾다

등록 2021.09.06 13:20수정 2021.09.0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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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곳에 비해 노동 환경이 쾌적한 편인 서울 신당동에 있는 봉제업체
다른 곳에 비해 노동 환경이 쾌적한 편인 서울 신당동에 있는 봉제업체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부가 한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데 남편이 손을 다쳤다. 아내 혼자 일하다 보니 수입이 줄어 대출 신청을 하게 됐다는 조합원, 피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던 딸이 피부과 진료를 받곤 밝아졌다며 뿌듯해하는 조합원, 대상포진, 무릎 수술로 몇 달 동안 일을 못 했는데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생계에 도움이 됐다는 혼자 사는 60대 조합원, 실비보험 가입 자격도 안 되는 데다 생활 형편도 좋지 않아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들었는데 녹색병원에서 무료로 진료를 받았다는 조합원... 그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힘들 때 봉제인공제회를 만나 단비 같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울지역 봉제 노동자는 9만 명 정도이고,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이하 화섬식품노조 봉제인지회) 부지회장이면서 봉제인공제회 팀장을 겸하고 있는 서영미씨는 20여 년 전에도 봉제 일을 해봤지만, 그때와 비교해 더 나아진 게 없다고 한다. 봉제 산업은 오히려 더 영세해지고 분업화되었다는 것이다.

"구로 쪽은 큰 공장들이 있겠지만, 그 외 서울지역은 거의 10인 미만 사업장이에요. 예전에는 본공장에 직원이 많았다면 지금은 하청으로 쪼개져서 분업화되다 보니 더 소규모화됐어요. 종사자들 공임도 더 낮아지는 구조가 돼버렸죠. 물가는 계속 오르지만, 공임은 이삼십 년 전과 변함이 없어요."

주로 온라인 쇼핑몰이나 동대문 패션타워에서 주문이 들어오는데 봉제 노동자는 옷을 만든 개수당 임금을 받는다. 이런 노동자를 객공이라고 부른다. 하나라도 더 자르고 바느질을 해야 돈을 더 버는 구조이다 보니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일감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봉제 산업은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한데 일 년의 절반가량이 비수기이다. 티셔츠를 만드는 곳은 주로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고, 한 달 단위로 급여를 받는다. 월급제로 보이지만 일이 없어 쉬는 날은 급여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일당제나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주문하는 업체 사장이 패턴비, 견본 제작 비용 등을 부담했지만, 지금은 공장 사업주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주도 불만이 많다. 주로 디자인 하나당 물량을 소량 주문한다. 많아야 20장에서 50장 정도다. 한마디로 다품종 소량 생산이 늘어났다. 사용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량에 상관없이, 공임 단가가 저렴해도 어쩔 수 없이 주문을 받아야 한다. 물량이 적다 보니 경쟁도 심하고, 공임은 계속 내려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영세한 사업주도 어렵기는 종사자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별 노동조합처럼 임금인상 투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 봉제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와 같이 정부나 서울시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10인 미만 영세 사업주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이유다.


노동조합 조합원=공제회 조합원
 
 조합원 상호부조 노동공게 사업현황(2021. 7. 30. 기준)
조합원 상호부조 노동공게 사업현황(2021. 7. 30. 기준)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18년 11월 27일,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려던 청계피복노조의 역사를 다시금 한 땀 한 땀 재봉질로 이어가려 서울봉제인노조를 설립한다"고 밝히며 화섬식품노조 봉제인지회를 창립했다. 봉제 산업은 일터 특성상 단위 사업장마다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어렵고, 노동자성을 확인받기도 쉽지 않다. 일 년 뒤인 2019년 11월 17일, 봉제인지회가 '공제회를 품은 노동조합'의 문을 열며 봉제인공제회를 창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봉제인공제회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노동조합에도 반드시 가입해야 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자동으로 봉제인공제회 조합원이 된다. 봉제인지회와 봉제인공제회는 하나인 셈이다. 20여 명으로 시작한봉제인지회 조합원은 221명이 됐다. 그 가운데 10% 정도가 사업주다.


봉제 노동자들은 평일 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니 주로 주말에 정기산행이나 공동영화 상영, 근·골격계 질환 예방 통증 관리를 위한 테이핑 강좌, 생활 소품 만들기를 주로 해왔다. 서영미 부지회장은 "지난 6월에 봉제인지회 조합원 야유회를 다녀왔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행사를 하나하나 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을 데려오다 보니 조합원 수가 늘더라고요. 그런데 코로나19로 행사를 못 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많아요"라며 올해 조합원 3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봉제인공제회 조합원이 되면 매월 노동조합 조합비 1만 5천 원과 공제회 부금 5천 원을 낸다. 아직 초기 단계라 공제회 부금만으로 운영하기 어려워 조합비에서 1인당 5천 원을 지원하고 있다. 봉제인들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했는데 비수기 때 대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자본금이 없다 보니 사회가치연대기금에서 돈을 빌려 소액신용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상호부조, 장례 서비스도 제공한다. 중위소득 100% 이하 조합원이면 의료비 전액을 지원받아 녹색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피부과와도 협약을 맺어 할인 서비스를 하고, 법무법인 오월에서 무료 자문 변호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자격조건을 갖춰야 한다. 필수 교육인 노동조합 교육 1시간, 노동공제회 교육 1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서비스 품목마다 다르지만 짧으면 1개월, 길면 6개월 이상 공제부금도 납입해야 한다. 7월 30일 기준으로 소액신용대출을 받은 조합원은 모두 29명으로, 노동자에게 주는 생활안정자금대출 18명, 사업주에게 주는 긴급운영자금대출로 11명이 혜택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일감이 더 줄어들다 보니 사업주도, 일하는 사람도 모두 힘들다. 비수기가 더 길어진 것이다. 그런데 봉제 노동자들은 소득 증빙이 안 돼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도 어렵다. 은행 카드론은 이자율이 높다 보니 돈이 급할 때 기댈 곳이 없었다. 그런데 공제회에 대출을 신청하면 담보가 없어도,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공제회 품은 노동조합, 노동조합 품은 공제회

"나를 믿고 대출을 해준다는 게 좋은 거죠. 어려울 때 다른 사람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되고, 조합원이면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까 안도감을 느낀다고 해요. 또 상호부조 지원을 내가 받진 않더라도 혜택을 받는 조합원들을 보게 되잖아요. 그동안 일터에서 소속감을 전혀 못 느끼다가 공제회에 가입하면서 소속감이 생겨 좋대요."

봉제인공제회는 조합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면서 나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곳이 되었다. 

서영미 부지회장은 노조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공제회라고 생각한다. 조합원이 가입할 때도 우리는 기본이 노조다, 노조에 가입해야 공제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선입견을 품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상황을 설명하면 이해를 하는 편이라고 한다.

"소모임이나 교육 등 일상사업은 봉제인지회 활동이에요. 앞으로 노조로서 무엇을 더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겠죠. 이전에는 당사자들의 일방적인 요구가 중심이었다면 공제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만들어나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주체성도 생기고 딱딱하지 않은 대중조직이 생겨 서로를 도와주고,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봉제인지회와 봉제인공제회는 공제회가 사회복지, 기업복지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이유를 만들어주고, 노조도 공제회를 통해 조직하는 상생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봉제인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노동공제회로까지 공제 사업을 확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의 출발점에 영세사업장 및 비정규 노동자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창립한 노동공제연합 풀빵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인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다.
#노동공제 #봉제인공제회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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