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말하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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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붙은 라벨을 꼼꼼히 읽어본 적 있나요? 라벨에는 소재, 생산지, 세탁 방법 등 옷에 대한 기본 정보가 담겨 있어요. 그런데 이 정보를 한 번 더 곱씹어 보면 라벨 너머 자리 잡은 생산구조가 보입니다. 생산과정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누가 고통을 겪는지 말이지요.
많은 옷의 소재로 폴리에스터(polyester)가 쓰입니다. 폴리에스터의 원료는 석유화학공장의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틸렌(ethylene)과 파라자일렌(paraxylene), 즉 페트(PET)입니다. 틀에 넣어 사출하면 페트병이 되고 실을 뽑아 옷감을 짜면 폴리에스터가 됩니다. 대체 석유에서 섬유 뽑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요?
석유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다방면으로 활용도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폴리에스터의 단가는 면보다 무려 70~80% 저렴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겠지요. 질기고 염색이 잘 되며, 구김이 잘 가지 않고 빨리 마르는 등 폴리에스터의 장점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편리한 기술이란 이유로 한 자락 의심 없이 두 팔 벌려 환영했다는 점은 무척 아쉽습니다. 편리함 이면에 숨어 있을지 모를 어떤 위험을 왜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까요?
옷이 일회용품이 되어버린 시대
라벨에는 중국, 인도, 베트남,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이름도 적혀 있어요. 염색, 워싱 등의 제조 공정에서 폐수를 비롯해 여러 오염원을 배출하는 의류 기업들이 비교적 환경 규제가 허술한 저개발국가로 공장을 옮겨다닌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저개발국가의 값싼 노동력은 저렴한 옷값으로 이어집니다.
옷값의 문턱이 낮아지니, 패션의 유행이 일 년에 많게는 오십 번이나 돌아옵니다. '패스트 패션'이라고 불리는 이유지요. 지난봄 입었던 옷은 이듬해 봄이 되면 이미 한물간 옷이 돼 버립니다. 싸게 산만큼 옷이 금방 해지기도 합니다. 입던 옷을 다시 입지 않게 될 확률은 점점 올라가겠지요. 옷이 일회용품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남북문제(North South Problem)의 시각에서 보자면, 잘 사는 북반구 소비자들이 계절마다 유행 따라 값싸게 옷을 사 입는 동안, 남반구 의류 공장은 무너져내렸습니다. 2013년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외곽에 위치한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사고였어요. 그곳에서 일하던 의류공장 노동자 1138명이 사망, 2500여 명이 부상당한 대형 사고였는데, 희생자 대부분이 여성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턱없이 싼 인건비를 받아왔는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사고 이후 피로 짠 옷을 입지 않겠다는 유럽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패스트 패션은 여전합니다.
그토록 많은 옷이 소비되니 버려지는 옷도 많을 수밖에요. 동네 의류 수거함으로 모이는 옷들의 행방이 궁금했던 적 있나요? 중고 의류의 고작 5%만 대한민국 땅에서 활용되고 나머지는 모두 저개발국가로 떠넘겨집니다. 우리나라 인구 규모는 세계 28위지만, 중고 의류 수출은 세계 5위입니다. 폐기물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저개발국가로 밀려드는 옷 가운데 절반은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 강가며 마을 곳곳에 산을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