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응용력' 보여주는 에어비앤비체

[제네바에서 생각하는 한국어와 언어들]

등록 2021.10.10 14:00수정 2021.10.1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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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난독화를 대신 해주는 사이트도 있다. 난독화 결과는?
한글 난독화를 대신 해주는 사이트도 있다. 난독화 결과는? airbnbfy.hanmesoft.com
 
해외 숙소 예약 사이트에 나쁜 평을 남기면 삭제될 수 있기 때문에, 삭제를 피하면서 한국인들에게만 실질적인 정보를 전달해주기 위해 한글을 읽기 어렵게 하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별점은 만점을 주고 숙소에 대한 칭찬을 빈말로 간단히 적은 뒤, 그 아래에 본격적으로 진심을 담은 평가를 쓴다. 이 평가를 인공지능 번역기가 읽어낼 수 없을 정도로 꼬아서 쓰는 것이 '에어비앤비체'다. 이런 에어비앤비체를 자동으로 적용해주는 한글 난독화 사이트도 등장했다(https://airbnbfy.hanmesoft.com).

이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난독화 방법은 네 가지다.
 
소리나는 대로 연음 법칙 적용
예) 여늠 법칙 저용

뒤에 오는 자음을 받침으로 중복
예) 자음믈 받침믈로 중복

자모를 비슷한 발음으로 변환
예) 쨔묘룰 삐쓨햔 뺠움우로 뼌완

의미없는 받침 추가
예) 읳밒없늕 받칢 춣갏
 
읽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대체로 한국인은 그럭저럭 뜻을 해독해낸다. 내가 가르치는 한국어 학생들에게 에어비앤비체를 설명해주고 각자의 모국어에도 비슷한 '비틀어 쓰기'가 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에어비앤비체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약한 수준으로만 난독화한 에어비앤비체(잏겋 읽읋 숳 있엏욯?)를 읽는 것도 매우 힘들어했다. 또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에서 그 언어 구사자들만 읽어낼 수 있는 암호화 문장이 있는지 물어봤을 때,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만들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고개들을 저었다. 아랍어를 쓰는 한 학생은 '잏겋 읽읋 숳 있엏욯'처럼 의미없는 음소를 추가해 아랍어판 에어비앤비체를 만들어보려 했으나, 구글번역기가 쉽게 번역해내자 실망했다.

나는 중국어판 에어비앤비체를 고안해봤다.
1) 哦吥呔噯哪哩啲咣喕。 俄他伓僾偭佨。
2) 䰀布泰艾纳礼得珖麪。 䰀冶布艾麪褒。

둘 다 我不太爱哪里的光面。我也不爱面包。(나는 저기의 광면국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빵도 좋아하지 않아요)를 변형시켜 본 것이다. 구글 번역기를 시험해봤더니, 성공! 번역기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1)번은 의미없는 받침을 추가하듯 의미없는 부수인 입구변, 사람인변을 추가한 변형이다. 2)번은 발음과 성조가 완전히 똑같지만 전혀 다른 한자를 썼다. 'Na는 저己의 國水를 좋A하JI 않Ayo'처럼 발음이 같은 글자를 무작위로 가져다 쓰는 형태의 변형이다. 1)번은 중국어를 조금 하는 사람도 읽어낼 수 있을 것이고, 2)번은 기계가 읽게 하면서 음성인식을 시키면 번역기가 곧장 의미를 파악할 것이다.

에어비앤비체의 친척들

에어비앤비체가 한글 암호화의 시작은 아니다. 


웹소설의 시초인 귀여니가 귀엽게 말하려고 혀짧은 소리를 내는 것을, 다시 모양이나 의미가 비슷한 모든 문자를 총동원하여 난독화한 '외계어'가 있었다. 에어비앤비체의 요소도 보인다. 예) 구!㉧ㅕ㉡ㅣ 만희♡즀썸! 【땠쯰】 (귀여니 많이 사랑해주셈! 때찌)

삐삐 시대에 숫자로 의미를 전달했던 것 역시 암호화의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숫자로 의미를 압축하는 것은 전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 486(사랑해), 8253(빨리오삼), 7942(친구사이)


야민정음은 비슷하게 생긴 글자로 대체하거나 90도, 180도 돌린 표기이다. 예) 늉눔(목욕), 롬곡(눈물), 뜨또(비버), 댕댕이(멍멍이), 학의건(학익진), 쀼(부부), 뀱밥(굴국밥), KIN(즐), 合(슴)

연예인들이 자기 이름으로 검색해보다가 악플을 보고 상처받을까봐, 글 쓸 때 연예인의 이름을 변형시키는 서치 방지 역시 암호화 방법을 쓴다.

한국어로만 가능한 에어비앤비체

알파벳으로도 난독화 문체가 존재한다. 외계어와 비슷한 방법을 쓰는 리트(leet)이다. 무규칙 이종 막 쓰기라는 방법 아닌 방법이다. 쉬프트키를 z로 잘못 누른 듯 zomg, the를 일부러 오타내듯 teh라고 쓰고, 알파벳 o를 숫자0으로 써서 L00K 4 S0ME F00D라고 쓰며, 야민정음처럼 MOM을 IVI0IVI으로 쓰는 등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서 난독화한다. 쓰는 데도 너무 오래 걸리고 알아보기도 너무 어려워서 외계어처럼 유행이 곧 시들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체처럼 어떤 언어의 고급 사용자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특정한 문체가 알파벳에는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리트로 영어 문장을 썼다면, 번역기는 못 알아봐도 프랑스어 사용자는 한참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상적인 알파벳으로 바꾼 뒤, 다시 번역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IVI ¥   IVI Ø IVI    ] $    α    I> Ø © '][' Ø Я

영어를 전혀 모르는 프랑스인이라도 알파벳 모양을 찾아내려고 한참 끙끙대면 MY MOM IS A DOCTOR 라고 해독해낼 수 있고, 이 문장은 다시 번역기가 번역해줄 수 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체는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나 번역기는 전혀 번역할 수가 없다. 한국어 사용자를 찾아서 읽어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이런 형태의 암호는 한글로만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에어비앤비체 #암호화 #야민정음 #리트 #외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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