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하임 지구의베하임 지구의(1492년 경)
공개된 이미지
그렇다면 베하임 지구의는 어떤 물건일까?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이 지구의는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상인 마르틴 베하임(Martin Behaim, 1459-1507)이 제작한 것으로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베하임은 1480년대 초반 고향을 떠나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이주하여 수년 동안 거기서 살았다. 당시 리스본은 탐험 항해 및 지리적 발견의 중심지였다. 항해와 지리 그리고 무역과 상품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그곳에 모였고 또 그곳으로부터 흘러 나왔다. 상인들, 항해가와 더불어 일류 지리학자, 수학자 및 지도 제작자들이 또한 모여들었으며 정보와 지도를 노리는 스파이들도 암약했다.
베하임은 자신이 포르투갈의 서아프리카 원정항해에 직접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그가 여러 지도와 항해 정보를 폭넓게 수집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는 1490년 고향인 뉘른베르크로 돌아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전하는 말에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베하임에게 지구의 제작을 의뢰했다. 화가와 기능공의 도움을 받아 베하임이 기념비적인 지구의를 완성하는 데에는 2년 남짓이 걸렸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지구의를 '지구사과Erdapfel'라고 불렀다. '지구사과'는 현재 뉘른베르크 국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베하임의 '지구사과'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혁신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프리카와 인도양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종래의 전통적인 서양지도들에는 아프리카의 남단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게 아니었다. 육지의 띠가 아시아의 동단까지 이어져 있었다, 따라서 인도양은 육지에 갇힌 내해였다.
그러한 지리관념에 균열이 생긴 것은 1488년 포르투갈 항해가 디아스Dias가 희망봉을 항해하면서였지만 그즈음에도 여전히 희망봉 저 너머의 해안선과 바다의 모습은 추측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베하임 지구의 상에서 아프리카는 바다로 둘러 싸여 있고 인도양은 개방되었다.
위의 지구의에서 보다시피 아프리카의 남단이 동쪽으로 뻗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는 종래의 전통적인 서양 지도의 유산이 반영된 것이다. 아무튼 베하임의 '지구사과'는 유럽에서 인도양으로 진입하여 향료와 황금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동방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웅변해 주었다. 그로써 서양인들은 동방 진출의 욕망을 지펴 올렸던 것이다.
한편 베하임의 '지구사과'에는 세계사를 바꾼 엄중한 오류가 담겨 있었다. 지구의 크기 자체를 매우 작게 계산한 데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 불과 며칠 만에 일본이나 중국 땅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묘사한 점이었다. 콜럼버스는 그러한 오인에 의존하여 서쪽으로 배를 몰았다. 그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신대륙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아무튼 베하임의 지구의는 여러모로 동시대 사람들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고 흥분을 일으키기에 족했다. 이 대목에서 아르메스토는 강리도를 베하임 지구의가 유럽인들에게 준 충격과 연계시킨다.
아르메스토는 "베하임 지구의는 한눈에 세계를 조망할 수 있게 해 주는 놀라운 작품"이며 "많은 오류와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기록물"이라고 평가한다. 나아가 그는 당시 동양에서 나온 지도에 관심을 돌린다면, 가장 훌륭한 지도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강리도라고 지적한다(출처: 아르메스토의 <1492: The Year the World Began>).
강리도는 1402년에 만들어졌고 많이 복제되었다. 지도 하단에 적힌 발문에서 유학자 권근은 지도의 완성을 흐뭇이 바라보면서 지도 제작의 과정과 목적을 기술하고 있다. 세계은 극히 넓어서 안으로 중국으로부터 바깥의 사해에 이르기까지 몇 천만리인지 알 수 없다고 권근은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지도들이 너무 엉성하거나 너무 간단하다고 비판한다.
강리도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전체를 보여준다. 한반도는 거대하고 상세한 반면에 유럽의 형상과 윤곽은 애매하고 개략적이지만 거기엔 약 100개의 지명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중국은 크고 상세하다. 인도는 미흡하지만 그 형상을 식별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는 서단 쪽에 짓눌려져 있다. 아프리카 내부의 대부분은 거대한 내해가 차지하고 있다.
지구적 시야를 담고 있는 강리도는 자부심과 기백이 넘친다. 1492년의 지구의가 유럽에서 일으킨 흥분은 조선에서 강리도가 일으킨 그것과 매우 흡사한 것으로 보인다."(출처: 상기 책자 관련 부분 요약)
우리는 영국 학자 아르메스토의 관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 학계의 강리도관과 대조해 본다면?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서양 최초 지구의와 비교해 강리도를 알아본 영국학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