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수 이사장이 5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출옥할 때 몰래 가지고 나온 2권의 악보집에는 11곡의 창작곡이 들어있다.
익천문화재단
그는 두툼한 음악 습작노트를 보여줬다. '고향의 강' '세월이 약이겠지요' 등 대중가요의 악보들이 필사되어 있었다. 그 속에 '길동무', '동상이몽', '삶으로 오라', '도대체', '어둠 속의 첫걸음', '내일', '사랑의 빛' 등 11개의 창작곡 악보들이 숨겨져 있었다. 작곡자 이름은 '김민혁'. 민중혁명을 의미하는 가명이었다.
"그렇다고 음악을 혁명의 무기라고까지 생각한 건 아닙니다. 저처럼 갇힌 사람들의 막막함과 고통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동무'가 되어 함께 나아가자는 내용을 담았어요."
그는 "어설프고 단조로워서 음악적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사에 시적인 상상력을 담지도 못해서 부끄러웠다"면서 "송경동 시인 등이 이걸 묻어두기에는 아깝다고 해서 가수이기도 한 이지상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6개월 만에 편곡하고 주변 가수들이 노래를 불러 음반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김 이사장은 겸연쩍어했지만, 이지상 가수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음반에 수록한 글에서 "국가는 청년에게서 내일을 빼앗았지만, 청년은 홀로 배운 기타를 뜯으며 희망을 새겨나갔다"면서 "삶의 엄중한 무게를 담은 청년 김판수의 노래 위에 조심스럽게 선율의 옷을 입히면서 나의 발바닥도 함께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적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익천문화재단의 공동이사장이기도 한 염무웅 선생도 "고독과 고난을 견디면서 그가 흥얼거렸던 노래들이 반세기의 침묵을 건너 오늘 우리에게 도착했다"면서 "50년 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세계에 던지는 희망의 전언이며 시간과의 싸움에서 거둔 승리의 가곡"이라고 평가했다.
2015년 12월 29일, 그를 옥죈 유럽 간첩단 사건은 43년 만에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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