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등에 근무하는 경비원이 경비 업무 외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시행된 2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경비원도 우리의 이웃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대전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아래 사업단)은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대전지역 500세대 이상 275개 아파트에 근무하는 2700여명의 경비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며 노동조건과 현황을 파악했습니다. 실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이 3개월 초단기 계약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아파트 직접고용이 사라지고 경비업체들이 들어오면서 사람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쉽게 고용하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초단기 계약을 맺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1년 계약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3개월, 6개월, 심지어 1개월짜리 계약을 한 곳도 있었습니다. 나이도 많아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고, 또 이렇게 고용이 불안정하니 부당한 일을 당해도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어 그들은 스스로를 '파리목숨'이라 표현합니다.
게다가 법 개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이를 핑계삼아 이 기회에 경비원 숫자를 줄여 비용을 남기려고 인원감축을 하는 아파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본인을 해고하라는 인원감축 동의서를 스스로가 들고 다녀야 하는 비참함을 토로하던 경비원들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인원이 감축된 뒤에는 남은 절반의 인원이 두 배의 일을 합니다. 한 개 동을 맡았던 분이 2개, 3개 동을 맡아서 일해야 하지만 급여는 그대로입니다. 청소도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장갑, 토시, 청소용구를 직접 사가는 분도 계셨습니다.
끝없이 떨어지는 낙엽 쓸기, 여름이면 제초 작업, 수목 전지 작업, 재활용 분리수거에 택배, 주차관리, 순찰업무, 관리사무소 보조업무, 밤 늦은 시간 휴게시간과 상관없이 민원이 들어오면 달려가 난감함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경비노동자. 현실이 이러함에도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감시단속직으로 분류되어 전근대적인 24시간 교대제 근무와 저임금을 감수해야 할까요?
가혹한 희생의 칼날이 돼 버린 개정안
더구나 경비원들끼리 경쟁과 감시를 하도록 만드는 비인격적 운영은 매우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경비원들을 위해 솔선수범하고 헌신하는 '반장'도 있지만 '반장'을 경비원 통제에 이용하려는 경비업체들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부 경비업체에선 개정안 발효 후 함께 일하는 경비원들의 근무태도가 어떤지 적어내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답니다.
경비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진행한 법 개정이 경비노동자에게 더욱 가혹한 희생을 강요하는 칼날이 되고 있으니 현장은 분노와 탄식이 교차합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가장이며 우리의 이웃인 경비노동자가 최소한의 노동조건이 보장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있는 지원과 현실적인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경비노동자분들은 '여기도 사람이 일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법과 제도, 그리고 우리들의 인식개선으로 함께 상생하는 아파트공동체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대전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요구안]
1. 관리업무를 겸직하는 경비노동자들을 감시단속직에서 제외하라.
2. 초단기 계약 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3. 자유로운 휴게시간과 제대로 된 휴게공간을 보장하라.
4. 1년 미만자 퇴직금 지급을 위한 퇴직급여보장법 개정하라.
5. 2022년 고용안정을 위한 교대근무제 개편 컨설팅 예산을 반드시 확보하라.
6. 초단기 계약 근절과 경비노동자 고용안정,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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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갑질 방지법', 이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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