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의 너른 터에 위치한 고달사지의 풍경산자락의 너른 터에 위치한 고달사지는 승탑, 탑비 등 국보, 보물로 지정된 석조문화재가 산재한 곳으로 유명하다.
운민
1000년 동안 찬란했던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는 절이란 명칭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터만 남은 그곳, 폐사지로 떠나려고 한다. 우리나라는 신라, 고려시대를 거쳐 불교가 융성했던 만큼 도시의 중심부, 풍수가 좋은 계곡, 마을마다 규모가 큰 사찰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산 깊숙이 자리 잡은 산사를 제외하고는 수많은 병란과 방화,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많은 절이 폐허가 되었다. 현재 목조로 만든 건축물은 초석만 남은 채 모두 사라지고 쓸쓸한 그 자리에는 탑, 승탑, 당간지주 등 석조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1000년 고도인 경주를 비롯해 부여, 익산 등 전국의 이름난 역사 도시마다 이름난 폐사지가 한 군데 이상 존재한다.
그럼 이곳 경기도에도 괜찮은 폐사지가 있을까? 우선 앞서 소개했던 양주의 회암사지를 먼저 들 수 있겠다. 조선 왕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회암사는 폐허만 남았지만 그 당시 화려했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번엔 경기도 남부 여주에 자리 잡은 고달사지를 떠나보려고 한다.
여주의 북쪽, 혜목산 아래 자리 잡은 고달사지는 고려 초기까지 작은 암자였지만 원감 화상 현욱이 고달사에 주석하면서 점차 규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사의 예우를 받았던 원종대사 찬유가 입적 후 광종은 특별히 명을 내려 도봉원, 희양원과 함께 삼부 동선원으로 삼으며 고려 3대 선종 사찰이 되었다.
하지만 이 번창했던 사원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1799년에 쓰인 <법우고>에는 고달사가 폐사된 것으로 기록된 것으로 봐서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한동안 절터 앞마당까지 민가가 들어차면서 예전의 영화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이젠 깔끔하게 절터를 정비하고, 위쪽엔 고달사를 계승하는 절도 새롭게 생겼다.
비록 터만 남았지만 고달사에 남은 석조 유물이 화려했던 예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국보로 지정된 고달사지 승탑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원종대사 탑과 탑비, 석조대좌 등이 있고, 쌍사자 석등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