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촌마을의 경주향교.
경북매일 자료사진
교촌마을의 중심 '경주향교'에 얽힌 이야기
궂은 날씨 탓인지 여행자가 많지 않았던 평일 오후. 한참을 국학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경주향교 아래서 고즈넉한 풍경을 즐기고 있자니, 교촌마을의 자랑이자 신라의 보물이기도 한 이곳이 어떤 이유로 세워진 것인지 궁금했다.
이 의문에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편찬한 책 <신라의 학문과 교육·과학·기술>이 친절한 답을 들려준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는 제도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신문왕 2년(682)에 국가 최고 교육기관이며 국립대학이라 할 국학을 확충하고 크게 정비하였다. 국학은 이후 약 1세기 동안 적지 않게 발전을 하였다. 왕들이 역대로 국학에 나아가 박사(博士)들에게 경의(經義)를 강론케 하는 등 명실상부한 유교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통치자들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국학은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다. 대성전, 명륜당, 전사청, 내신문 등이 세월의 이끼를 끌어안고 존재하는 곳.
이곳은 신라시대 국학이 설치된 위치고, 고려 때는 향학(鄕學)이 있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학문을 탐구해 시대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청년들의 열정은 신라, 고려, 조선이라는 시공간을 뛰어넘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수많은 '흥미로운 스토리'를 간직한 교촌마을과 경주향교. 그래서일까? 김민정의 논문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문화적 장소 브랜드 디자인 연구>는 교촌마을의 변화·발전 방향을 아래와 같이 조언한다.
"오늘날은 문화적 역량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문화는 국민의 삶의 질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전통문화는 한 국가와 민족의 문화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했다. 가히 문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인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며 가치를 높이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몫이다."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재와 유적은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 사실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특히 경주처럼 한국 어느 지방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국보·보물급 유적과 유물을 다수 가졌다면 이것들의 향후 보존·개선 방안을 수립할 때 위에 인용된 김민정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