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 떠나는 노태우 대통령1992년 10월 5일, 노태우 대통령은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민자당의 당적을 떠나겠다는 9.18선언에 따라 당사를 방문, 탈당계를 제출한후 당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노태우 정권이 초기에 갖게된 정치적 부담은 전두환 처리와 중간평가의 문제였다.
전두환과는 육사동기에 동향이고 함께 12ㆍ12 반란을 주도했으며, 자신을 민정당 대선 후보로 지명해 준 관계였다. 전두환은 일가의 비리와 광주학살 등의 책임을 물어 백담사로 유배되었지만, 개인적ㆍ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중간평가는 노태우 후보가 대선 직전에 득표용으로 선언한 공약이었다. 야당과 사회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였고, 노태우로서는 이를 실시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였다.
노태우는 4당체제의 여소야대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컸다. 박정희ㆍ전두환 정권의 일사분란한 통치행태에 익숙해 온 6공세력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세력의 규합에 나섰다. 이 정치공작의 책임은 노태우의 심복으로 정무장관이었던 박철언이 맡았다. 박철언은 1989년 1월 18일 밤 10시 15분부터 새벽 1시 20분까지 세 시간 넘게 김대중과 동교동 지하 서재에서 만났다. 용건은 노태우의 특사 자격으로 민정ㆍ평민 통합을 위한 타진이었다. 박철언의 기록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 온 거물 정치인의 강인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김총재가 상당히 논리적이고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마칠 때까지도 "과연 이 분의 정치이념은 무엇인가. 또 인간성은 어떨까?"
"국민화합ㆍ민족통합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통령 각하와 총재님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안정 속에서 발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해 김대중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박철언은 썼다.
김총재는 국내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5공청산과 민주 실천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대로 못하면 임기보장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힘은 무서운 겁니다. 극우가 극좌를 부릅니다. 노조 때문에 운운해도 87년, 88년 세계 최대의 경제성장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지난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의 수준도 놀랍게 발전한 것입니다." (주석 9)
박철언은 끝내 김대중을 '설득'하지 못하였다. 김대중은 원칙주의, 다시 말해서 상식에 반하고 정도에 벗어나는 정치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사 박철언의 심야 2당 합당 제의가 수용되지 않자 노태우가 직접 나서 청와대에서 김총재에게 평민ㆍ민정 통합을 제의했으나 역시 거부되었다.
김총재의 통합 거부는 다시 한번 그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다. 박정희의 부통령제, 전두환의 협력 제의를 거부하면서 겪게된 고통을, 농도는 다르지만 이번에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2월 9일 노태우ㆍ김영삼ㆍ김종필은 3당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창당하여 노태우를 초대 총재, 김영삼ㆍ김종필ㆍ박태준을 각각 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 창당대회 뒤 노태우는 김영삼을 대표최고위원으로 지명했다.
민자당은 국회 299석 중 218석을 점유하는 맘모스 정당이 되었다. 총선 민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인위적 정계개편이 이루어졌다.
나는 민주당의 김영삼총재를 만나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번 3당 합당으로 어떤 이익을 얻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 이 일로 정계에서 당신이 어떤 성공을 거두게 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이번에 옳은 선택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이 3당 합당 덕에 결과적으로 김영삼씨는 대통령이 되었고, 나는 김영삼씨에게 패하여 은퇴하였다. 패자가 된 내 말은 설득력을 잃었지만 역사는 그 일을 어떻게 평가할까? (주석 10)
주석
8> 『김대중자서전(2)』, 235쪽.
9> 박철언,『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1)』, 359~360쪽, 랜던하우스중앙, 2005.
10> 『김대중 자서전(2)』,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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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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