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초청 간담회 자리에 참석하려고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들이 함께 오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전략적 차원에서 본 화해통합론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이 인간적·철학적·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대단히 정교하면서도 치밀한 정치전략적 성격을 갖고 있다. 뛰어난 전략가인 김대중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필자는 이것을 3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평화적 민주화 이행과 관련한 것으로서 이는 4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 김대중은 기존의 보수 인사들까지 포함한 최대연합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포용하려는 세력의 적대감을 완화시키고 우호 관계로 변모시켜서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최대압박을 하려고 했다.
2) 김대중은 독재 정권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과 함께 박정희, 전두환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민주화 이행을 목표로 했다. 김대중은 군사독재 정권이 매우 폭력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상대에 대한 극단적인 입장을 배제한 것이다.
3) 독재 정권이 민주화 세력을 폭력 혁명을 추구하는 위험한 세력으로 낙인찍는 상황에서 독재 정권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4) 미국을 고려한 것이다. 미국은 동북아 정세의 안정이라는 큰 목표에서 대한정책 방향을 고려했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던 김대중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미국 내의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래서 미국이 독재 정권을 지지하지 않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이처럼 4가지 관점에서 평화적 민주화 이행을 위해서 화해통합론을 제시한 것이다.
둘째, 국가안보 때문이다. 김대중은 화해·용서·관용을 국민통합적 관점에서 중요시했다. 그리고 국민통합은 국가안보에 있어 기본이 되기 때문에 김대중은 자신의 과거사 해결 방법을 국가안보의 관점에서도 인식했다. 김대중은 시민사회 내부의 견고한 연대 의식과 신뢰감이 형성될 때 진정한 국민통합을 달성할 수 있고 이것이 국가안보의 초석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반공국가주의처럼 공포심과 배제의 원리로 제시된 권위주의 정권의 접근 방식과는 다른 부분이다.
셋째,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그의 원대한 구상과 관련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역사적 조건에 의해서 과거사 문제는 국내 문제임과 동시에 남북관계, 국제적 성격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상호중첩된 것도 존재한다. 김대중은 이와 같은 과거사 문제의 복합적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만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서 김대중이 제시한 노선이 화해·용서·관용이었다. 김대중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일본 등 한국 주변 국가와 전방위적인 화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 연장선 상에서 국내 문제에 있어서도 동일한 노선을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김대중의 화해·용서·관용의 대상은 전방위적 성격을 띤다.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은 정교하면서도 담대한 정치적 비전 속에서 나온 전략이다. 김대중의 구상은 한국이 민주화 이행 단계에 있다는 점, 민주화 이후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점 등 한국이 처한 거시적인 역사 조건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이해에 기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