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인 박씨가 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대법원이 불법성이 없다고 판단한 민사 1, 2심의 결론을 뒤집고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적시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조혜지
"여태까지 해온 것보다 길고 어려운 싸움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끝까지 간다. 끝나야 끝이고 그 끝은 내가 정한다."
2017년 6월, 박수진(가명)씨는 자신의 SNS 계정에 끝을 보겠다는 기록을 남겼다. '#성추행당해서끝까지싸우는중'이라는 해시태그도 달았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모두 허위로 인정한 형사 1심 판결 종료 후 항소를 결정하면서다. 그러나 이어진 형사 항소심과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 1심, 2심에서 내리 패소했다. 박씨는 지난 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긴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마음 속 꺼지지 않는 화였다"라고 회고했다.
한 대학어린이병원 후원회에서 경력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한 박씨에게 가해자의 괴롭힘이 시작된 것은 2014년. 그는 후원회 이사이자, 외래 치과 교수로 모금 행사 때마다 박씨에게 업무를 지시한 인물이다. 2015년 10월 15일의 일은 박씨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는 그날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빼빼말랐는데 요즘 살이 쪘다", "다리가 가늘고 새하얗다. 잔털은 쉐이빙하냐"라는 등의 성희롱 발언은 약과였다. 가해자는 사건 당일 서울 근교 한 골프장에서 열린 만찬 행사를 망쳤다고 질책하며 피해자에게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사건 발생 장소인 골프장 VIP룸엔 가해자와 피해자 둘뿐이었다. 매를 가져오지 않자 "왜 안 가져오냐" 채근했다. 결국 나뭇가지를 들고 온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자세를 취하게 했다. 그리곤 "몇 대 맞겠냐"고 물었다. 그 사이 피해자의 바지 주머니가 울리자 "녹음하고 있느냐"고 의심했다. 여기까지는 가해자도 수사기관 진술을 통해 자인한 사실이다. 피해자가 이 사실을 상부에 알린 직후엔 직접 사과문도 보냈다.
그러나 형사 재판부는 수진씨가 "계약직 유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허위 진술했다고 보고 가해자에게 무죄 선고를 했다. 그 근거로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가 "녹음 하지 않았다"거나, "저항 없이 차에 동승했다"는 이유를 나열했다. 가해자의 행위는 성희롱이 아닌 '과한 질책' 정도로 축소됐다. 추행과 폭행 사실 또한 목격자가 없고, 피해자 진술만 있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민사 재판도 다르지 않았다. "불법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한 줄뿐, 내리 기각이었다.
소송 과정에서 겪은 일이 더 모멸스러웠단 수진씨
분투의 끝은 2021년 11월 25일, 사건 발생 후 만 7년이 지나서야 길을 찾았다. 대법원(3부 주심 안철상 대법관)이 민사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고 가해자의 행위를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희롱에 해당하고 불법 행위 책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 가해자의 당시 행위는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도 명시했다.
대법원은 환송 법원에게 사건을 돌아보라는 숙제를 냈다. "형사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진술의 합리성을 비교하라"는 것이었다. 피해자를 대리한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 시행 전 발생한 일이라도 그에 해당하는 행위라면 위법하다는 점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물론 다른 노동자에게도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수진씨는 당한 사건보다 소송 과정에서 겪은 일이 더 모멸스러웠다고 했다. 돈벌이를 지키려고 일을 벌였다면 2천만 원에 달하는 소송비용과 7년이란 시간을 써가며 "여기까지 오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형사 2심 패소 후 가해자로부터 날아든 무고 고소장에 수사기관을 오갔다. 오후 1시에 시작해 밤 11시에 끝나는 수사도 받았다. 당시 앉아 있었던 철제 의자의 감촉은 상담 진료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았다.
박씨는 "높은 지위에 계신 분들의 프레임에 오래 갇혀 있었다. '너는 계약직이고 어린 여자애니 이 일이 절실했을 것이다'라는. 사건 자체보다 나를 그렇게 본다는 시선이 더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의사가 아니라 저처럼 계약직이었다면 판결이 달랐을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나도, 가해자도 계약직이었다면 달라졌을까"
- 11월 25일, 대법원이 가해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실감이 안 났다. 현실이 아닌 것만 같고. 곱씹다보니 좋으면서도 허탈했다. 뛸 듯 기쁠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았다."
- 대법원 판결문 중 어떤 대목에 가장 눈길이 갔나.
"이거 하나 받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다. 가해자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주장된 사실 관계 상당 부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고 적은 대목이다. 형사, 민사 앞선 모든 재판에서 똑같은 증거와 내용으로 다퉜지만,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판단이다. 저한테는 꼭 인정받고 싶은 사실이었다."
- 사건 발생일로부터 약 7년 만의 결론이다.
"어린이병원 후원회 일을 시작한 게 2014년 3월부터고, 입사 후 얼마 안 돼 선임의 퇴사로 일을 맡으며 가해자와 맞닥뜨렸다. 당시엔 '미투'에 대한 인식이 많지 않은 상태라, (피해를 당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위에 보고해도 '피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이었다. 내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고, (피해) 강도가 점점 심해졌을 땐 '처음부터 대처를 적극적으로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많이 했다. 지금 보면 그런 생각은 사실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재판을 이어가다 보니 퇴사할 수 없었다. 내가 떳떳하고 당당하다는 걸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사건 발생 후) 곧바로 징계 등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 그럼 내가 해보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나 하나 꼬리 자르는 식으로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다보니 7년이 갔다."
- 버티기 힘들지 않았나.
"회사선 제가 불편했을 거다. (사건 발생 후) 징계 없이 가해자는 사직서를 썼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후원회 관련 업무를 계속 지시했다. 그게 오히려 저한텐 자극이 됐다.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꺼지지 않는 마음 속 화였다. '너 결국 재판도 다 못 이긴 거 아냐?' 하는 말들, 그런 게 불을 지폈다."
- 형사 1, 2심 판결문을 보면, 피해자가 계약직 신분을 유지하려고 허위 증언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제의 VIP룸 성희롱 사건 당시 '녹음기를 켜지 않았다' '차량에 저항 없이 동승했다' 등 피해자 책임을 언급하기도 한다.
"'네가 피할 수 있었는데 안 피했잖아'는 식이다. 들으면서 '할 말인가' 싶었다. 그 상황이 됐을 때 누구든 쉽게 녹음을 할 수 있나? 당시 판결문을 보면 인상 깊은 대목이 있다. 내가 행사를 망쳐 계약직에 잘릴 위기를 모면하려고 재판으로 시간을 끌려고 한다는 취지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 회사가 무슨 대기업처럼 대단한 회사가 아니다. 일을 꾸미면서까지 그렇게 다닐 곳이 아니다."
- 계약직이라는 시선이 판단에 작용했다고 보나.
"의사, 판사 등 높은 지위에 계신 분들의 프레임이 씌워졌다고 본다. '너는 계약직이고 어린 여자애니까 이 일이 절실할 거야'... 도대체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본 걸까? 고작 그런 걸로 거짓말할 사람으로 봤을까? 사건 자체보다 나를 그렇게 본다는 시선이 힘들었다. 안 다니면 그만인 회사였다. 하지만 (사건 해결에) 인생을 걸었을 뿐이다. 모멸감을 느꼈다. 그런 생각도 했다. 둘 다 계약직이었다면. 그럼 달라졌을까."
- 가해자가 자인한 사안에 대해서도 형사 재판부는 질책일 뿐, 추행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오히려 가해자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선임한 가해자가 자신은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울며 말할 때, 어쩐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기울어진 상태에서 시작했다. 경찰이든, 법원이든."
- 형사 재판은 결국 검찰이 상고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상고를 간청했다고 알고 있는데.
"검찰에 연락을 시도해 검사실 직원과 연락을 했다. 전화 한 번 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 검찰도 (내리 패소하니) 의지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과정에서 한 가지 흠이라면 당시 내가 절망감에 빠져 정신을 붙잡지 못한 거다. 찾아가서라도 '해주세요' 해볼 걸. 난리를 쳐볼 걸."
- 민사 상고의 경우, 직접 변호인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 마음에 남았다.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대로 내가 한 60년은 더 살 것 같은데, 이걸 안고선 제대로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가해자 측에서) 민사가 시작되기 전 저와 제 주변인들을 무고로 고소한 것도 불을 지른 계기가 됐다."
"첫 경찰 조사 땐 소장도 제대로 안 보고 물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