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전
사계절
젊은 청년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반면 존 패트릭 루이스가 글을 쓰고 게리 켈리가 그림을 그린 <크리스마스 휴전>은 비감합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살해 사건에 강대국이 저마다의 이익을 내세워 시작된 1차 대전은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참호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책을 열면 '당신을 원한다'는 모병 포스터 앞에 앳된 젊은이가 서있습니다. 전쟁이 터진 191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스무 살이 될 오웬 데비이스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고향 웨일스를 떠난 여행, 그건 프랑스 해협을 넘어 벨기에를 지나 프랑스까지 수천 km로 이어진 서부전선 전장을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청년을 맞이한 건 길고 지리한 공방전 속에 추위와, 참호 주변에 치울 수도 없이 쌓인 군인들의 시체, 발이 썩이 들어가는 병,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 귀조차 뜯어먹는 쥐들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적들의 급습으로 병사들이 볼링핀처럼 쓰러져가는 중에도 고향에서는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꼭 함께 보내자'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브의 저녁, 이상하게도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독일군 진영에서 불을 밝힌 나무들이 빛났습니다. 그리고 독일 병사의 '스틸레 나흐트(고요한 밤 거룩한 밤)'가 들려왔습니다. 목소리가 좋아 성가대를 하라던 칭찬을 받던 오웬은 용기를 냈습니다. '저 들밖에 한 밤중에 양틈에 자던 목자들~', 적군과 아군 모두가 박수를 쳤습니다.
서로에게 '괴물'이었던 양국 군인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참호 밖으로 나와 다가섰습니다. 초콜릿도 바꾸고, 단추도 나누고, 가족의 사진도 보여주었습니다. 서로 이발을 해주고, 어울려 노래도 부르던 이들은 동이 트자, 참호 주변에 있던 '적'들의 시체를 서로 묻어주었고, 돼지 한 마리의 행운을 나누었습니다.
나무의 불이 꺼지고 날이 밝았습니다. 정찰을 위해 사격용 발판에 올라선 오웬은 잠시, 들판이 푸르러지기 전에 고향에 돌아갈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꿈은 거기서 끝납니다.
어제는 서로가 어울려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이던 이들이 하룻밤이 지나고 다시 서로에게 총을 겨눕니다. 이게 인간이 벌인 '전쟁'입니다. 그리고 그 전장에서 이제 막 스물이 된 청년은 그 생을 다합니다. 그게 겨우 전쟁의 첫 해인 1914년이었습니다. 1918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30여 개 국에서 온 천만 명에 가까운 군인들이 그렇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이라고 기록된 픽션, 그렇다면 청년 오웬에게 온 '크리스마스 선물'은 기적처럼 벌어진 '휴전'일까요? 적군과 아군에게서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었을까요? 그게 아니면 앳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소총수의 저격이었을까요? 청년이 본 마지막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