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은 아빠의 되묻는 말에 아주 퉁명스레 답한다. 어떤 말에는 아예 대답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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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도 몇 년 전부터 TV 음향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보신다. 대화와 맞지 않는 다른 말을 하시기도 한다. 보청기를 사드린다고 해도 주변에 보청기 끼고 어지럼증을 겪는 사람이 많다고 싫다 하신다.
눈에 좋은 음식이나 눈을 좋게 하는 운동은 많은데 청력을 좋게 하는 음식이나 운동은 들어본 적이 없다. 검색창에 '청력에 좋은 음식', '청력에 좋은 운동'을 치니, 웬일... 정력에 좋은 음식과 운동이 좌라락 뜬다.
며칠 전, 날이 좀 쌀쌀해져 아빠 외투를 사러 함께 백화점에 갔다. 월급이 들어온 날이라 내친김에 신발도 사시라고 했다. 나는 아빠 옆에서 같이 신발을 고른다. 아빠는 내 말을 몇 번씩 확인하시고 또 자신의 의견도 몇 번씩 이야기 하신다. 직원은 아빠의 되묻는 말에 아주 퉁명스레 답한다. 어떤 말에는 아예 대답도 않았다.
아빠 : "(255 사이즈를 신고서) 이거 260 신고 싶은데요."
나 : "이거 260 있어요?"
직원 : "260은 고객님께 안 맞으세요. 지금 발가락이 그쪽에 있잖아요. 260은 헐떡거려서 안 된다고요."
아빠 : "260 없어요?"
직원 : "아니, 260은 안 맞으신다고요. 이 신발이 크.게. 나.왔.어.요."
나 : "260 안 맞는대. 그냥 다른 거 보자."
내가 다 식은땀이 났다. 손님이 많았으면 바빠서 그랬거니 했겠지만, 그 매장에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신발 매장을 나와 점심을 먹는데 아빠는 얼마 전 치과에 다녀오신 일을 말씀하셨다.
"지난주에 치과를 갔는데 치과 의사가 내 이를 보고 '아버님, 백점입니다!'라고 하더라."
"응?"
"이 사이에 낀 게 하나도 없다면서 엄지를 '척' 내밀더라고."
좋은 이야기인 것 같은데 말하는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다.
"칭찬 아니야?"
"아니, 요새 치실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내가 애도 아니고. 참."
아빠는 자신을 아이처럼 대한 치과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뜨끔했다. 사실 아빠와 한 시간 정도 쇼핑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와 쇼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아빠가 직원에게 하는 말이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내가 미리 나서서 정리했다. "아빠, 그래서 이게 마음에 드시는 거예요?" 하고서. 우리 아이가 어릴 때 어른에게 길게 이야기하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