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빠는 가깝고도 먼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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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를 여직원들에게 맡겨 놓고, 남자들끼리만 있는 무리 틈에 끼어 술을 마셨다. 재봉 일을 하던 회사에는 남자 직원들과 여자 직원들이 반반이었는데,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모여서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나는 여자 직원들 무리에 끼어 밥도 얻어먹고, 과자도 얻어먹고, 사진도 찍었다. 다행히 여직원들은 나를 귀여워 해주었고, 나뭇잎으로 모자도 만들어 씌워주었다. 하루 종일 아빠와는 멀리 떨어져서 놀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빠는 나와 놀아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때 유일하게 남은 사진은 집으로 돌아갈 때 아빠와 손잡고 걷는 사진이었는데, 사진 속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무심히 걷고 있었다. 같이 있지만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 무뚝뚝한 사람, 그분이 우리 아빠였다. 가족이지만 나에겐 멀리 떨어진 사람이었다.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노는 아빠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아빠를 개인으로서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적 분위기로 이해하려 애썼다. 먹고 살기 바빴던 시대 아니었던가. 개인의 생활보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시 되었고, 사회적 분위기상 남자는 집안일과 육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당연시 되던 때였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 모습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편이 아빠를 이해하는 데 훨씬 편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와 자식의 관계는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성인이 되어보니 다 나 같은 성장 환경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찾자면, 내 남편은 좀 달랐다.
나는 아이들과 30분만 놀아도 피곤해하는 편이었다. 보드게임이나 레고블럭을 조립하면서 노는데, 30분이라는 한계 시간을 벗어나면 어떻게 더 놀아야 할지 난감했다. 책을 읽어주는 것도 30분이면 족했다. 그 이상은 아이들도 집중하기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다.
남편의 노는 방식은 좀 달랐다. 몸으로 놀아주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같이 만화를 보며 깔깔댔고, 게임을 같이 했다. 남편은 아이들과 한번 놀기 시작하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놀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육아에서 좀 놓여났다.
언젠가 휴일에 함박눈이 왔다. 아이들과 남편은 눈싸움을 한다며 나가 놀았다. 한참 놀다가 밥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아빠와 신나게 놀고 온 아이들은 볼에 엷은 홍조를 띠고 있었고, 집에 들어와서 아빠와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떠들었다. 동네 아이들까지 붙어서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신난 모습이 좋아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애들하고 잘 놀아줘서 고마워."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노는 거지."
그제야, 남편이 아이들과 오랫동안 놀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아이들과의 놀이가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었고, 재미있게 놀 줄도 몰랐고, 즐길 줄도 몰랐다. 반면 남편은 재미있게 노는 방법, 즐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남편의 아버지, 즉 나의 시아버지부터 이야기해야 할것 같다. 남편은 종종 아버님과 놀았던 추억을 이야기해주곤 했는데, 단칸방에서 꼬리잡기 한 것에서부터 낚시를 다닌 이야기,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던 이야기, 같이 등산한 이야기 등 무궁무진했다. 남편은 아버지와의 놀았던 추억이 많았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