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조작 피해자 유족의 소송 관련 기사
KBS
지난 6일,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이 고문 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간첩조작 피해자는 1965년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나포되었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간첩 혐의로 불법 체포되었고, 당시 그에게 고문을 주도했던 자가 바로 이근안이다.
피해자는 이근안에 의해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었고, 7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43년이 지난 2021년 6월 그 피해자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당시 이근안과 국가기관이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죄 없는 시민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어 버렸음이 밝혀진 셈이다.
그럼에도 이근안은 지난 2013년 자서전을 통해 이 피해자에 대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문 가해자인 그는 반성과 사과는 온데간데없고 여전히 자신의 불법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합리화하는데 급급하다.
이 피해자(그는 2006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의 유족이 이근안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소송은 근본적인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고문 가해자는 언제나 이근안 한 사람이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현행법상 고문 가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은 형사소송의 테두리가 아닌 민사소송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왜 고문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나
우리는 왜 고문 피해자는 알면서도 고문 가해자는 알 수 없는 걸까. 또한 우리 현행법은 왜 고문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있는 걸까. 이같이 잘못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해결돼야 한다.
첫째, 고문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2021년 10월 기준, 국가기관에 의해 간첩조작으로 사형, 무기징역,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수십 년이 흘러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만 449명에 이른다. 이는 재심이라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 수치이며,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간첩조작 고문피해자들의 수는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이렇게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문 가해자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밖에는 없다. 이근안은 수많은 고문 가해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1970~80년대, 고문을 통해 간첩을 조작해냈던 수사기관인 중정·안기부(현 국정원), 보안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치안본부(현 경찰청) 등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11월, (사)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제기한 '부적절한 서훈 취소' 관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행정법원은 1970~80년대 고문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고문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셈이다. 그러나 이 판결을 통해 공개될 고문 가해자는 50여 명에 그친다. 당시 수많은 고문 피해자의 숫자를 생각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더 큰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