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시인의 시집
시인생각
저는 설날 아침을 언제나 시골집에서 맞이하고 있습니다. 도시보다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낯선 바람은 아닙니다. 상쾌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당하죠. 항상 이와 같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런데 올해 설의 아침 바람은 다르게 느껴질 듯합니다.
명절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명절뿐만이 아니죠. 연말연시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 중심의 삶을 보내는 저로서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바뀐 것이 없고, 회식과 술자리를 꺼리기에 한편으로 마음 편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삶을 생각할 때 코로나19는 어서 종식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몇 년 더 이런 상황이 지속한다면 명절도 유명무실해질 수 있을 듯합니다.
한 해, 한 해 명절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육형제의 맏이인 아버지에게는 다섯 명의 동생이 있는데요 이제 명절에 찾아오는 형제도 몇 되지 않습니다. 찾아온다고 해도 명절 아침에 잠깐 찾아왔다가 훌쩍 떠나가 버립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명절이면 큰 형 집을 찾아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삼촌의 자녀들도 하나둘 결혼을 하자 뜸해지고 흩어지더군요. 꼭 오라고 전화를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던 아버지도 언제부터인가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합계 출산율 0.8명인 시대, 만약 10년이 더 지난 2030년쯤이면 우리의 설 모습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적잖이 바뀔 것입니다. 여러 사촌이 함께 모였던 명절 문화는 완전히 소멸하고 부모와 자식이 모여 단란한 식사를 하는 명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쩌면 저는 이것이 더 긍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1인 가구의 수가 31.7%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더 증가하겠죠. 1인 가구란 '나 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취업, 생계, 사별 등의 이유로 혼자 살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렇듯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명절의 유명무실을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명절만큼은 계속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명절이 있어서 가족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형식에 얽매이는 명절이라면 반대합니다. 그 누구도 즐거울 수 없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