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2146, 529> 표지책 제목 <2146, 529>는 2021년 한 해 동안 산업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죽음을 나타내는 숫자다.
온다프레스
출근은 했으나 퇴근하지 못한 노동자들
"매일 5, 6명의 노동자들이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2146, 529>, 5쪽)
"숨졌다", "사망했다", "사망", "목숨을 잃었다", "숨을 거뒀다". 노동건강연대가 기획하고 이현이 정리한 책 <2146, 529> 곳곳에 박혀 있는 말이다. 책은 2021년 1월 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산업 재해로 사망한 고인들에 관한 짧고 건조한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출근은 했으나 영원히 퇴근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죽음을 감추려는 듯 인용된 기사는 그 흔한 애도와 추모의 말도 없이 메말라 있다. 날짜별로 정리된 그 너무도 마른 문장들은 역설적이지만 강한 습기로 읽는 사람을 붙잡아 둔다. 마치 세상에 죽음을 새겨 넣기라도 하듯이.
"'2146'은 2021년 산재사망자 수의 추정치(2,146명)입니다. 또한, '529'는 2,146명의 산재사망자 중 사고로 사망하거나 과로사한 노동자의 수만을 따로 표기한 것으로, 트위터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이 안전보건공단의 속보와 일간신문의 기사를 토대로 매일 집계한 결과입니다." (<2146, 529>, 10쪽)
책 본문에 등장하는 '노동자의 죽음을 알리는 문장'은 반복된다. "눌려", "끼여", "떨어져", "깔려", "찔려", "추락"... 읽다 보면 같은 사건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보면 시간과 장소가 다르다.
"반복은 사건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2146, 529>, 191쪽)
2021년 한 해에만 2146명이 산업 재해로 사망했다. 매년 비슷한 상황이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사람들 숫자다. 한 줄 기록도 없이 일터에서 돌아가신 분도 많다. 매년 수천 명의 사람이 같은 이유로 목숨을 잃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 언론 모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업과 사회가 함께 만든 "살인"
우리 헌법 10조는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생명은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전국 곳곳에서 공통된 이유로 국가가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반헌법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왜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될까?
"한국에서 노동자 산재사망을 다루는 지배적 프레임은 산재사망을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와 불운, 기업 활동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로 봅니다. … 이 프레임 내에서 산재사망은 사회가 관심을 가질 사안이 아닌 것이지요." (<2146, 529>, 6~7쪽)
어떤 현상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문제 해결 방향과 방법이 달라진다. 우리 사회는 한 해 2천 명이 넘는 사람이 숨지는 산업 재해를 특정 노동 현장이나 일하는 사람의 책임으로 치부한다.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기 때문에 사회적 해결에 게으르다.
잘못된 원인 진단의 바탕에는 뿌리 깊은 '노동 경시' 문화가 자리한다. 정치인이 법률에 정해진 노동 시간 위반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대통령이 경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기업인을 찾아가도 별일이 없다. 유력한 대기업이 수십 년 동안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기본권을 공공연하게 침해해도 처벌은 고사하고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