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출판사 홈페이지의 홍보이미지.
도서출판 책읽는곰
소년은 수많은 소리에 둘러싸인 채 잠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소년은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말할 수가 없다. 소리는 목 안에 달라붙어버리고 소년은 돌멩이처럼 조용하게 아침을 보낸다. 분절된 이미지로 표현된 소년의 모습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그의 상태를, 의지와 현실이 분리된 속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소년은 발표 시간이 제일 두렵다. 선생님의 지목으로 교실 앞에 선 소년은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소년의 내부에서 소리와 빛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남들과 다른 소년의 입에만 주목하는 반 아이들 앞에서 소년은 울먹거린 것도 같다. 희뿌옇게 번진 이미지들은 눈물을 흘릴 때 눈앞에 보이는 풍경 그대로다.
소년을 데리러 온 아버지가 아들의 기분을 알아차린다. 그는 조용히 아들을 강가로 데리고 간다. 강가에 다다라 아버지는 소년에게 말해준다. "너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그 순간 소년은 흘러가는 강물을 본다. 그저 유유히 흘러가는 줄만 알았던 강물이 실은 굽이치고 부딪히고 부서져도 쉬지 않고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부드럽게 물결친다는 것도. 이내 소년은 말한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고.
그 소년의 성장담이 가르쳐 준 것
이 그림책은 말을 더듬는 남과 다른 자신을 받아들이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과 인물의 내면에 깊이 동화된 그림의 힘은 소년에게서 우리 자신을 보게 만든다. 아득한 소년의 시선에서 남들과 비교하며 초라해지는 나를 보고, 돌멩이 같은 침묵에서 머릿속 생각을 재빠르게 꺼내어 유려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내 문장의 답답함을 느낀다.
자연스럽고 유창한 자기표현을 부러워하는 마음에 쫓기며 비교에 급급한 나머지 놓치고 있는 건 없었을까? 말과 생각의 멈칫거림 사이에 머물러 있었던 마음의 소리는 얼마나 다양했던가? 보이고 들리는 것 너머, 다른 이의 마음과 내 마음속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제대로 말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소년의 말하기를 떠올리며 곰곰 생각한다.
이렇게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나와 타인, 나와-나 사이의 진정한 표현과 소통의 방식을 생각해 보게 한다. 소년이 말을 더듬는 것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간절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나의 그것에도 가만히 귀 기울여 본다. 머물러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더디고 서툴더라도 천천히 문장으로 바꾸고 글로, 그림책으로 만들어 나가보고 싶어 진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소년이 눈을 감고 강물 속에 있는 자신을 상상하는 모습이다. 소년의 뒷모습, 그 가장자리를 따라 윤슬이 반짝인다. 소년의 표정은 평온하다. 두 손을 써서 책장을 활짝 펼쳤을 때 마주하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장면, 시인의 깊은 문장을 두고 작가가 고심 끝에 그려낸 그림. 이 그림을 통해 소년의 눈부신 깨달음과 성장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소년은 이제 더듬거리는 자신을 비웃는 반 친구들 앞에서 말할 것이다. 강물처럼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