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인도 위에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다. 올해부터 플랫폼 업체와 1개월 이상의 노무 제공 계약을 체결해 월 보수액이 80만원 이상인 퀵서비스, 대리운전 기사에게 고용보험이 적용된다.
연합뉴스
이씨에게 지난여름은 악몽과 같았다. 장대비가 쏟아져 우비를 입었지만, 습하고 높은 기온에 우비 안쪽은 땀에, 밖은 비에 젖어 안팎이 다를 게 없었다. 이러니 악천후 때는 근무를 하는 기사가 줄어든다. 현재 배차 처리되지 않고 밀려 있는 배달 건만 100건이다. 이런 날은 사무실에 의한 강제배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무거운 헬멧과 우비, 마스크까지... 숨이 턱턱 막힌다. 대여섯 시간 동안 단 10분도 쉬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막혔던 스마트폰의 신호가 터지며 강제배차된 대여섯 건의 배달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주변에 다수의 사람이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XX,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제 그에게 남은 운명은 '욕받이'다. 가게 주인은 우리 가게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냐고 난리를 칠 것이고 문 앞 손님은 굳은 얼굴로 짜증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 배달 앱 리뷰에는 이런 악플이 달릴 것이다.
'배달은 거북이고 음식은 쓰레기였다'
봄, 가을은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 배달 기사도 많아진다. 문제는 이때가 외식업계의 보릿고개라는 거다. 이제는 진짜 적자생존이다. 배달요청 건이 스마트폰에 올라오면 0.1초만에 사라진다. 이씨 같은 노쇠한 중년이 스마트폰 세대인 청년과 경쟁이 될 리 없다.
이씨가 어두운 눈과 굼뜬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더듬거릴 때 청년들은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배달요청을 채 간다. 이런 계절엔 청년들이 외면하는 똥콜로, 그리고 이들이 퇴근한 심야까지 근무 시간을 늘려야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장면3] 배달 기사는 범법자, 고객과 플랫폼은 교사자?
"지금 몇 시예요? 보니까 사장님 같은데 이렇게 늦을 거면 애초 안 시켰죠! 장사 똑바로 하세요, 이런 것도 일종의 사기예요."
문 앞에서 부동자세로 타박을 받았던 오래전 이 기억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게 덜 나쁜 기억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끝에 다다른 어느 늦은 밤, 배달할 음식을 가지고 지친 몸을 끈 채 도착한 어느 집은 인터폰을 통해 너무 늦게 왔으니 그냥 돌아가라며 문전박대했다. 그때 난 흡사 멱살을 잡혀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요즘은 손님 대신 플랫폼 기업들이 그 악역을 대신한다. 배달 기사들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은 기사가 콜을 잡으면 시한폭탄의 시계처럼 작동을 시작한다. 그러다 한계점에 다다르면 남은 시각을 표시하는 숫자는 붉은색으로 바뀌며 기사를 좀 더 압박한다. 거기에 고객 평점 시스템으로 기사를 을러댄다.
이런 스트레스는 전업이건 부업이건 배달 기사란 일을 선택하는 순간 각오해야 할 필연이다. 강 건너편에서 혀를 차던 사람도 강을 건너 이곳에 발을 들이면 자신이 비난하던 그런 배달 기사가 되었음을 발견한다. 이곳 시스템이 반드시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고객을 위해 최선의 시스템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배달 직업은 조선 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하니 이 직업의 역사가 생각보다 꽤 깊다. 그러함에도 얼마 전까지는 대부분 나와는 다른 별세계의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던 이 직업이 우리에게 이렇게나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최근 일이다. 우스갯소리로 현재 대한민국은 '전 국민의 배달원 화'가 진행 중이라는 말이 오고 간다. 실제 길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다양한 탈것과 자신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배달 부업을 하는 남녀노소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직업을 바로 볼 시점이라고 본다. 이 직업에 관심을 두는 분들은 '뒷 광고' 비슷한 고액 수입이란 기사 타이틀에만 현혹되지 말고 이 직업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배달 음식은 애용하면서도 배달 기사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분들은 현상보다 원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막무가내 비난은 에너지만 소모할 뿐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업 배달 기사들은 이제는 그 무엇보다 자신과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올바른 직업정신 갖춰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 직업이 우리 사회에 바르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세심하고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해 주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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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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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기사'란 일 선택한 순간 각오해야 하는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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