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배달 기사'란 일 선택한 순간 각오해야 하는 필연

[사오정 이야기] 배달 기사들의 진짜 현실 보여주는 사례 셋

등록 2022.03.12 18:38수정 2022.03.12 18:38
10
원고료로 응원
필자는 배달외식업 자영업자였으며 한때 배달대행 사업과 배달 플랫폼 앱 사업에도 참여했었고, 직전까지는 배달외식업 프랜차이즈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수년 동안 투잡으로 대형 브랜드 가맹점에서 배달 기사로도 일하고 있습니다.[기자말]
지난번 기사 <'배달만으로 월수입 1300만 원', 비밀은 이렇습니다>(http://omn.kr/1x1ge)를 통해 요즘 인구에 회자하는 배달대행 기사의 고수입 진실 여부를 알아보았다. 그 기사의 내용을 압축 요약하면 이러했다.

'배달로 고수입을 올리는 게 가능은 하지만, 극성수기에 극히 일부 대행기사의 이야기이며 특히나 그 수입을 위해 그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당신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며칠 전 정부는 소비자단체협의회에 조사를 위탁해 배달 플랫폼별 소비자 부담 배달비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잡음을 냈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이제 배달비는 음식 가격에 슬쩍 얻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비용이 아닌, 배달을 활용하는 주체가 반드시 부담해야 하는 비용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유튜브에는 배달대행이란 신종(?) 직업에 발을 담근 사람들의 경험담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이유로 돈벌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도 한 번'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글에선 이런 분들을 위해 배달업의 이면 즉, 여러분은 볼 수 없는 문 뒤에서 벌어지는 애환을 전하려 한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은 가상인물이지만, 일화는 필자와 주변 종사자들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장면1]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직업
 
 배달기사(자료사진)
배달기사(자료사진)권우성
 
한파가 몰아친 어느 날, 배달대행 기사 김씨는 아침부터 배달요청 세 건을 묶었다. 그런데 첫 번째 집부터 심상치 않다. 아파트 공동현관 입구에서 인터폰으로 여러 번 호출했지만 무응답이다. 전화 통화를 위해 장갑을 벗었다. 영하의 칼바람에 손가락이 금방 온기를 잃었다. 고객과 전화 연결이 되었지만, 그는 볼일이 있어 잠깐 밖에 나갔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 '조금만'이 사람에 따라 1분일 수도 10분 일수 있음을 경험상 알고 있던 김씨는 곤란함을 전했다.

고객은 공동현관 앞에 음식을 두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날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는 거다. "빨리 오셔야 합니다. 피자는 금방 식어요." 김씨는 이 당연한 사실을 고객에게 상기시켜야 했다. 혹시라도 식은 음식 배달했다는 고객 항의에 대한 예방 조치였다. 이전에도 이런 일을 종종 경험했기 때문이다.

부리나케 오토바이에 올라 다음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공동현관에서 집에 사람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문 앞 초인종 호출에는 무응답이다. 답답했다.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몇 분이지만 누군가에는 소중한 몇 분이 흐른 뒤 야속한 한마디가 들렸다. 


"문 앞에 두고 가세요!"

주문서 어디에도 그런 요청 사항은 없었다. 메모를 남겼으면 진작 두고 갔을 일이다. 예상치 못한 시간을 뺏겼다. 마음이 바쁘다. 큰 사거리, 노란 신호에서 빨간 신호로 바뀌는 순간이지만 멈출 수는 없다. 식은땀이 났다.


세 번째 집은 28층이다. 엘리베이터 한 대로 움직이는 고층 아파트였다. 최악이다.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여기도 응답이 없다. 뒤쪽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힌다. 일단 음식을 문 앞에 두고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지금 놓치면 다시 올라오는데 하세월이다. 김씨의 스마트폰에는 이미 두 개의 새로운 배달 건이 사무실에 의해 강제배차 되어 있었다.

지상으로 내려와 오토바이 시동을 걸자 스마트폰 벨 울린다. 강제 배차된 음식점이다. 배달 기사를 재촉하기로 소문난 가게였다. 이런 배달 건을 기사들은 '똥콜'이라 부른다. 즉, 배달 기사를 닦달하거나 재 시간에 음식이 준비되지 않는 가게, 다루기 어려운 음식 등 기사들이 기피하는 배달 건을 통칭한다. 그래서 이런 건은 대행 사무실에서 강제로 배차한다. 이어폰에서 가게 주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나와 귀에 꽂혔다. 

"기사님 어디에요? 왜 빨리 안 와요!!"
"네네, 금방 갑니다."


전화를 끊자 이번에는 대행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기사님 직전에 갔던 A 아파트에서 전화 왔어요. 집에 사람이 있는데 누가 바닥에 음식 놓고 가라고 했냐고 난리 났어요."

[#장면2]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
 
 지난 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인도 위에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다. 올해부터 플랫폼 업체와 1개월 이상의 노무 제공 계약을 체결해 월 보수액이 80만원 이상인 퀵서비스, 대리운전 기사에게 고용보험이 적용된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인도 위에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다. 올해부터 플랫폼 업체와 1개월 이상의 노무 제공 계약을 체결해 월 보수액이 80만원 이상인 퀵서비스, 대리운전 기사에게 고용보험이 적용된다.연합뉴스
 
이씨에게 지난여름은 악몽과 같았다. 장대비가 쏟아져 우비를 입었지만, 습하고 높은 기온에 우비 안쪽은 땀에, 밖은 비에 젖어 안팎이 다를 게 없었다. 이러니 악천후 때는 근무를 하는 기사가 줄어든다. 현재 배차 처리되지 않고 밀려 있는 배달 건만 100건이다. 이런 날은 사무실에 의한 강제배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무거운 헬멧과 우비, 마스크까지... 숨이 턱턱 막힌다. 대여섯 시간 동안 단 10분도 쉬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막혔던 스마트폰의 신호가 터지며 강제배차된 대여섯 건의 배달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주변에 다수의 사람이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XX,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제 그에게 남은 운명은 '욕받이'다. 가게 주인은 우리 가게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냐고 난리를 칠 것이고 문 앞 손님은 굳은 얼굴로 짜증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 배달 앱 리뷰에는 이런 악플이 달릴 것이다.

'배달은 거북이고 음식은 쓰레기였다'

봄, 가을은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 배달 기사도 많아진다. 문제는 이때가 외식업계의 보릿고개라는 거다. 이제는 진짜 적자생존이다. 배달요청 건이 스마트폰에 올라오면 0.1초만에 사라진다. 이씨 같은 노쇠한 중년이 스마트폰 세대인 청년과 경쟁이 될 리 없다.

이씨가 어두운 눈과 굼뜬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더듬거릴 때 청년들은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배달요청을 채 간다. 이런 계절엔 청년들이 외면하는 똥콜로, 그리고 이들이 퇴근한 심야까지 근무 시간을 늘려야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장면3] 배달 기사는 범법자, 고객과 플랫폼은 교사자?

"지금 몇 시예요? 보니까 사장님 같은데 이렇게 늦을 거면 애초 안 시켰죠! 장사 똑바로 하세요, 이런 것도 일종의 사기예요."

문 앞에서 부동자세로 타박을 받았던 오래전 이 기억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게 덜 나쁜 기억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끝에 다다른 어느 늦은 밤, 배달할 음식을 가지고 지친 몸을 끈 채 도착한 어느 집은 인터폰을 통해 너무 늦게 왔으니 그냥 돌아가라며 문전박대했다. 그때 난 흡사 멱살을 잡혀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요즘은 손님 대신 플랫폼 기업들이 그 악역을 대신한다. 배달 기사들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은 기사가 콜을 잡으면 시한폭탄의 시계처럼 작동을 시작한다. 그러다 한계점에 다다르면 남은 시각을 표시하는 숫자는 붉은색으로 바뀌며 기사를 좀 더 압박한다. 거기에 고객 평점 시스템으로 기사를 을러댄다.

이런 스트레스는 전업이건 부업이건 배달 기사란 일을 선택하는 순간 각오해야 할 필연이다. 강 건너편에서 혀를 차던 사람도 강을 건너 이곳에 발을 들이면 자신이 비난하던 그런 배달 기사가 되었음을 발견한다. 이곳 시스템이 반드시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고객을 위해 최선의 시스템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배달 직업은 조선 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하니 이 직업의 역사가 생각보다 꽤 깊다. 그러함에도 얼마 전까지는 대부분 나와는 다른 별세계의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던 이 직업이 우리에게 이렇게나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최근 일이다. 우스갯소리로 현재 대한민국은 '전 국민의 배달원 화'가 진행 중이라는 말이 오고 간다. 실제 길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다양한 탈것과 자신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배달 부업을 하는 남녀노소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직업을 바로 볼 시점이라고 본다. 이 직업에 관심을 두는 분들은  '뒷 광고' 비슷한 고액 수입이란 기사 타이틀에만 현혹되지 말고 이 직업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배달 음식은 애용하면서도 배달 기사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분들은 현상보다 원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막무가내 비난은 에너지만 소모할 뿐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업 배달 기사들은 이제는 그 무엇보다 자신과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올바른 직업정신 갖춰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 직업이 우리 사회에 바르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세심하고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해 주어야 할 때라고 본다.
#배달대행 #배달음식 #배달 플랫폼 #배민 #쿠팡이츠
댓글1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세상 이야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2. 2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3. 3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4. 4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