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의 한 민간업체가 공익목적 사업으로 강제 수용한 골프장 조성 부지를 공사도 하지 않은 채 18년간이나 보유하다 몰래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강원 강릉시 경포라카이샌드파인 골프장 운영사 ㈜승산은 4년 전인 2018년 3월, 6홀 골프장 건설 예정부지 188,998㎡(5만7천여평)를 바이오제약사인 ㈜파마리서치에 '체육시설 해제'를 전제로 조건부 매각했다. 매매 대금은 65억8천만 원으로, 현재는 잔금 8천만 원만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파마리서치 측은 향후 이 부지를 '치유공원' 유원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해당 부지를 체육시설 목적 외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용도변경이 필수고, 반드시 강릉시의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토지등기부등본 상 명의는 아직 ㈜승산 소유로 남아있다. 체육시설 해제가 완료되는 시점에서 잔금 지급과 명의 이전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공익 목적으로 수용한 토지를 임의로 매각할 수 있느냐다. 공익사업법에 따르면, 수용된 토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승산은 지난 2003년 40만평 규모의 18홀 회원제 골프장 부지를 인수한 뒤 2007년 2월 강릉샌드파인골프클럽을 완공했다. 또 다음해에는 이와는 별도로 6홀 퍼블릭 골프장을 추가로 건설하겠다며 공익사업 체육시설 지구지정 방식으로 인근 사유지 210,271㎡(6만3천여평)를 협의매수와 강제수용(11필지) 방식으로 수용했다.
승산은 이후 사업기간 연장을 반복하며 공사를 하지 않고 버티다, 결국 14년 만인 2018년에 이 부지를 다른 용도로 몰래 매각했다.
토지보상법에는 공익 목적으로 취득한 토지의 경우 취득일로부터 5년 이내에 취득한 토지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 사업에 이용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원 소유자가 토지를 돌려받을 수 있는 토지환매권이 발생하고, 사업시행자는 이를 토지소유자 및 관계인에게 통지·공고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아 원 토지주들이 해당 토지의 환매권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을 경우 손해배상을 하도록 명시돼 있다.
따라서 승산의 경우, 수용 토지를 무려 18년간(명의상)이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토지환매' 사유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관련 법령에 따라 원 토지주(협의매수,강제소용 포함)들에게 토지를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승산은 원 토지주들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은 채 부지를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관리 감독 권한을 가진 강릉시는 실시계획인가 취소와 청문 등 후속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관련법에 따르면 단체장은 사업시행자가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폐지하거나 변경함으로 인하여 수용 토지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을 인지했을 경우, 청문 절차를 거쳐 인가 취소와 고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만약 강릉시가 규정대로 했더라면 원 토지주들은 환매권을 행사 할 수 있었다. 강릉시는 이에 대해 "등기부 등본상 명의 이전이 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승산은 왜 골프장을 건설할 의지도 없으면서 오랫동안 실시계획(사업계획)을 연장해왔던 것일까? 부지 매각 이후에도 두 차례나 더 실시계획을 연장했다는 점은 더욱 의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승산이 원토지주들에 대한 '환매권 방어'와 '농지법 위반'을 피해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시계획 기간 중에는 사업의 지속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만약 승산의 실시계획 인가가 취소될 경우 이는 곧 사업중단을 의미하고, 이럴 경우 승산은 원 토지주들에게 환매 사유 발생 통보를 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땅을 되돌려줘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농지법위반 문제도 병행된다. 승산이 소유한 체육시설 부지에는 전·답 농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농지법에는 경작하는 농업인이나 농업법인만이 농지를 소유하도록 하고 농지를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사람이 아니라면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따라서 사업 중단이 될 경우 승산은 골프장 부지에 포함된 농지를 1년 이내 처분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징역 5년 이하에 벌금도 부과될 수 있다.
승산이 수용부지를 매각한 것이 확인된 만큼, 협의매수나 강제수용 등 관계없이 원 토지주들은 승산을 대상으로 의무 미이행으로 인한 '환매권' 상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실제로 이런 소송을 통한 배상 사례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 국민임대주택사업을 위해 수용한 토지를 개발하지 않았음에도 기존 토지 소유자들에게 환매권(원소유자가 다시 매수할 수 있는 권리)을 제때 통보하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수억원의 배상 명령을 받았다.
지역 주민들은 "승산이 사유지 6만평을 헐값에 매입하고, 골프장을 짓겠다며 지역 주민들에게 취업 조건 등을 제시했고, 6홀은 콘도 건설 후에 이행하겠다고 수차례 약속까지 했지만 결국 몰래 매각해서 수십억의 시세차액을 남겼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현재 승산에게 토지를 강제수용 당한 원 토지주들은 승산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승산 측에 여러차례 입장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