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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MBC 사무직 프리랜서, 방송계 첫 노동자성 인정

법원 "회사가 직접 고용 회피했다" 판단... 무기 계약직 차별은 해소 못해

등록 2022.03.19 17:25수정 2022.03.1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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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22일 권리찾기유니온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가짜 3.3 방송노동자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특별접수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퍼포먼스를 열고 있다.
2021년 12월 22일 권리찾기유니온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가짜 3.3 방송노동자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특별접수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퍼포먼스를 열고 있다.권리찾기유니온

대구MBC에서 만 14년 동안 제작비 정산과 입·출금 관리 업무를 담당해온 프리랜서 사무직원이 최근 법원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 방송제작 외 직군의 특수고용 형태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방송계 첫 번째 사례다.

대구MBC 회계팀 직원 박아무개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등 소송에서 박씨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대구지법 민사13부(재판장 정인섭)의 판결이 지난 5일 확정됐다. 1심 선고는 지난 2월 11일 나왔으나 박씨와 대구MBC가 모두 항소하지 않아 이달 판결이 확정됐다. 2019년 9월 소송이 시작된 지 4년 만이다.

박씨는 2008년 6월 파견노동자로 대구MBC에 입사해 지금도 일하고 있는 15년차 프리랜서 직원이다. 사용자가 법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쓸 수 있는 2년 기간이 초과하자 2010년 6월 프리랜서로 전환됐다. 경영사업본부 회계팀 소속으로 금전출납, 지출결의서 검토 및 보고, 일계표(일일 거래를 계정별로 집계한 표) 및 자금일보 작성 등을 주업무로 맡았다.

재판부는 "금전출납은 회사 내부 전산망에서만 접속 가능한 송금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관리자로부터 OPT기계를 전달받아야 했고 법인통장도 회사 사무실 내 금고에서 보관중이었다. 박씨는 사무실을 떠나 일하기 어려웠다"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상근했고 매월 고정금을 받았으며, 금전출납, 지출결의 검토, 자금일보 작성 등은 관리자 결재를 통해 할 수 있었기에 박씨 업무는 프리랜서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구MBC는 박씨가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거나 박씨가 프리랜서 계약 체결에 직접 서명했고 이와 관련해 법적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각서를 제출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 사정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인하기 부족하고, 달리 회사 주장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프리랜서 계약은 "(파견 2년 계약 만료 후)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를 회피하려는 의사로 체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기계약직 차별은 해소 못해... "반쪽짜리 판결" 비판 


박씨 월급은 정규직보다 현저히 적었다. 유사 경력의 정규직원과 비교하면 매달 200만~300만원씩 차이가 났다. 공개 채용 전형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존 취업규칙을 적용받지 않는 '별정직' 계약직보다도 매달 80만~160만원씩 덜 받았다. 월급은 매해 적으면 5만원, 많으면 20만원씩 인상돼 2010년엔 130만원, 2013년엔 155만원, 2018~2019년엔 200만원을 조금 넘겼다. 

이번 판결이 '반쪽짜리'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임금 차별에 대해 소극적으로 판단해서다. 박씨는 회사가 유사 경력의 정규직과 자신이 받은 임금의 차액을 지급해야한다고 법원에 주장했다. 자신의 업무 범위나 책임 권한이 같은 팀의 정규직과 차이가 있더라도, 업무 내용상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면 동종·유사 업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경력이 유사한 정규직과 임금을 비교해 임금 지급을 주장한 것. 박씨가 주장한 차액은 7년 간 9400여만원으로 계산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될 뿐인 박씨에게 (정규직) 취업규칙이 직접 적용된다고 보는 건 대구MBC 취업규칙 관련 조항에 반하고 소속 직원들 공통적 의사에도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씨 업무와 다른 정규직이 동종·유사 업무에 종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2년 단위 계약직과 무기계약직을 기존 정규직과 구분해 별도 처우를 정하는 기존 관행에 손을 들어준 것.

'사내 골품제', '중규직' 등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 차별은 방송사 곳곳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업무 내용과 성격상 계약직과 정규직이 동종·유사 업무를 맡고 있음에도 입직 경로 등이 다르다며 다른 취업규칙을 적용받는 게 문제다. YTN 무기계약직 4명이 2020년 11월 낸 차별임금 소송과 전주MBC 직원 2명이 2020년 7월 제기한 소송이 현재 진행 중이다. MBC 본사의 무기계약직들도 2020년 고용노동부에 차별 진정을 여러 차례 접수한 바 있다.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 부위원장)는 1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떤 사업장의 노동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이 있다면 노동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모두 적용받아야 하고 이 점이 권리보호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며 "그러나 이번 판결은 대구MBC의 기존 정규직원들에게 적용 규범이 다른 별정직(무기계약직)과 사후에 노동자로 확인된 사람에게까지 적용되는 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판결문을 보면 박씨가 정규직도 별정직도 아닌 '사후적으로 확인된 노동자'라며 박씨에게 적용할 취업규칙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그 자체로 모순적"이라며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정작 소송을 통해 실질적으로 확인받으려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보장해주지 않은 반쪽짜리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 #대구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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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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