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들은 아무것도 우연에 기대지 않고, 잘못될 수 없을 정도로 밑작업을 철저히 한 후 어떤 공정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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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두 겹을 겹쳐놓고 패턴을 그 위에 올려 한 번에 두 장을 자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칭을 이루는 재킷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수고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후 잘라낸 천이 늘어져 크기가 달라지지 않도록 조각마다 심지를 붙였다.
전문가라고 후루룩 만들어도 잘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구나. 전문가란 아무렇게나 해도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해?' 싶은 것까지도 빼먹지 않고 하는 사람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장인들은 아무것도 우연에 기대지 않고, 잘못될 수 없을 정도로 밑작업을 철저히 한 후 어떤 공정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이겨놓고 전쟁을 시작한다는 손자병법 속 장수처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내가 부러워했던 바느질 커뮤니티의 고수들이 떠올랐다. 별 생각 없이 툭 재단해서 대충 바느질했는데 그런 결과물이 나왔을 리 없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뜯었을 사람들. 거의 다 만든 옷이라도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휴지통에 처박아 버리고 다시 만들어서라도 자기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 장인을 만드는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손재주가 없다고 하면서 사실은 안일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행복한' 사고를 수습하기 급급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려운 옷이 있는 게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옷이 있는 것이다. 어깨와 몸판, 옆선만 박으면 완성되는 민소매 티셔츠든, 겉감, 안감, 카라, 입술 주머니가 달린 재킷이든 두 겹의 천을 맞대어 박는 것 이상 다른 차원의 작업은 없다. 이런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 많은 과정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다 밟아가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똑같이 공을 들여 만들어도 손끝이 더 야무진 사람,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면 된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한 단계 대충 넘기지 않고 차근차근 만들어보자고 결심한 후 재단 한 번 하려고 선을 세 번이나 그리다 보면 언제 다 만드나 싶어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에게 말한다.
"지금은 기회의 문이 열려 있는 기간이다. 지금 귀찮다고 눈을 질끈 감고 대충 넘어가고 나면 옷이 완성됨과 동시에 그 기회의 문도 닫힌다. 한 단계 한 단계 공들여 만든다고 해도 2~3주면 완성이 될테고 완성되고 나면 잘 만들어진 옷을 입으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몇 년을 갈테지. 그러니 지금 당장 더뎌도 기회의 문이 열려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하나도 건너뛰지 말고. 그렇게 만들어진 옷이 주는 만족감을 오래 느끼자."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만든다는 찐 장인의 근성은 내게 없다. 만든 옷의 시접이 풀리지 않도록 오버록을 하다가, 튀어나온 여분을 자르면서 박는 오버록의 칼날에 천이 씹혀 다 된 옷에 구멍을 내는 대형 사고를 치면 다시 만들기보다는 이미 망친 걸 잘 때워보는 쪽을 선택한다. '참~ 쉽죠'라는 말로 나에게 전문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던 애증의 밥아저씨가 한 말을 떠올리면서.
"여러분, 우리는 실수를 하는 게 아니예요. 행복한 사고가 있을 뿐이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그린 걸 활용하는 법만 익히시면 됩니다."
그의 위로에 기대어 아이디어를 짜내서 그 '행복한' 사고를 수습한다. 그의 말처럼 다음에 그리(만들)게 될 작품은 더 나아질 테니까.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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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없다 탓하지 마세요, 고수가 되는 법은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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