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스님의 초상 조각상이다. 2020년 10월 국보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했던가. 갓 돋아난 미나리 새싹처럼 파릇파릇했던 청춘 시절. 강한 전기에 감전된 듯 전율이 느껴졌던 시어를 읽고 또 읽었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정작 시인은 열아홉 나이에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정한(情恨)이 서려 있는 이 시를 지었지만.
그 청춘, 중년을 훌쩍 넘기고서야 세상만사 모든 일이 번뇌가 되고 번뇌가 깊을수록 깨달음은 곧 별빛이 된다는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봄날, 세속적 번뇌를 종교적 별빛으로 승화시킨 고승의 초상(肖像)을 뵙고 나서야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라는 부처님 말씀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임을 깨닫게 되었다.
번뇌를 초월한 실존 스님의 초상 조각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청정도량 합천 해인사. 우리나라 삼보(三寶) 사찰 중에서 법보(法寶) 사찰이다. 신라시대 창건된 천년 고찰 해인사의 '해인(海印)'이란 거친 파도와 같은 마음속 번뇌 망상이 멈출 때 비로소 삼라만상의 참모습이 그대로 바다에 비치는 것과 같은 경지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