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 2020년 엄마 복희씨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곡기를 끊는 그 마음의 절박함을 알고 계신가요? 49년생 여성인 제 생모 복희씨는 아직도 자신이 곡기를 끊고, 살던 방에 불을 질러 죽으려고 했던 때를 되짚고는 몸을 부들부들 떱니다. 지켜줄 부모도 없고 이웃이나 친구도 빼앗긴 채, 가난한 가계의 종처럼 살다가 팔려가듯 시집을 가 가부장의 폭력에 시달렸던 그 한 인간은, 생때같은 자식 셋을 두고 도망칠만큼 절박했지요.
자식까지 버리고 도망쳐 나왔어도 어디에도 기댈 곳 없던 그 생은, 육시랄 왜 내 팔자만 이러나 싶은 그 억울함은, 끝내 곡기를 끊고 죽자 다짐했습니다. 제 살던 방에 불을 질러 놓고도 구사일생 끌려 나오며 땅을 치고 울었던 건 여기에 희망이 없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겠지요. 저 세상이 어떤 꼴이건 여기 이 세상보다야 지독할까 그런 마음이 이 생을 포기하게 했겠지요.
49년생 여성 복희씨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름도 없이 죽어간 무수히 많은 성소수자들이 그러했을 것이고, 불과 작년에 한꺼번에 죽은 세 명의 트랜스젠더들이 그러했을 것이고, 1995년 자신의 노점 철거에 항의하다가 분신한 장애인 최정환이 그러했을 것이고, 2001년 일도 못하게 하면서 28만 원 기초생계비로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제 목숨을 끊어 대통령에게 그 간절함을 전하려했던 발달장애인 여성 최옥란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실패'한 삶에 관해선 짐작할 수 있겠지요? 온 힘을 다 해 애썼지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끝내 실패하고만 그 무력감이 어떤 건지 지금이라면 다들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어쩌려고 다들 이러나 싶은 그런 불안과 두려움일 겁니다. 저 조차도 요즘은 정치 뉴스를 보지 못합니다. 아무리 제일 나중으로 밀려난 무가치한 생이더라도, 그래도 국민의 책임은 놓치고 싶지 않아 꼼꼼히 정치인들의 발화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을 읽고, 때로는 탄성을 지르고, 때로는 탄식하던 그 시간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설마 일만 명도 되지 않는 트랜스젠더 나부랭이이니 일만 명의 안위만을 꿈 꿀거라 생각하진 않으시겠지요? 제 아비는 나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가 평생 고통 속에 희생된 군인이었고, 제 어미는 가부장의 폭력에 희생해야했던 삶이면서도 아이를 셋이나 낳고 키우려 했던 순종적이고 복종할 줄밖에 몰랐던 평범한 여성이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성소수자이지만, 이 나라에 제 아비와 같은 국민이 희생을 치를 일이 다시 없기를 바라고, 제 어미처럼 순하고 재능 있던 한 여성이 가난과 불평등으로 인해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채 그 삶을 망쳐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맞습니다. 제 아비와 어미는 정치를 몰랐을 테고, 저 역시 정치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정치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러한 제 태도와 감각을 뭐라고 이름 붙이든 간에, 저는 '정치'라는 분야에서 저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과, 노력과, 성실함과, 인내를 쌓은 누군가는, 분명히 저보다 나은 판단을 할 거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배운 사람'이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분명 '못 배운 사람'이란 말처럼 얄팍한 것 일테니까요. 그래도 저보다 더 오래도록 성실했고, 노력했고, 언제든 국민을 위해야 하는 정치인이니, 그만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고민과 고민을 거듭했을 테니, 제가 모르는 현명함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저는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