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봄
그러나 저자는 통념을 뒤집는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흑인들이 노예가 되는 원인이 검은 피부가 아니라 차별과 억압인 것처럼 일정한 손상을 지닌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는 원인 역시 손상이 아니라 바로 차별과 억압이라는 뜻이다. 즉 '손상→차별과 억압→장애인'인 것이다.
이처럼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되므로 장애는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고,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닌 비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장애 문제의 해결책은 개인의 손상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억압을 없애는 데 있다. 인간 존엄성의 기반 역시 인간 내부의 이성이나 자율성이 아닌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만 존재한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김도균 교수의 <한국 사회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속 헌법 전문이 담고 있는 사회정의의 원리 중 하나인 '사회적 관계의 평등 원칙'에 대한 설명과 일맥상통한다.
김도균 교수는 "사회적 관계의 평등 원칙은 정의가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이라고 말한다. 관계의 평등은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평등하게 존중하고 대우하라'는 심층적 차원의 근원적인 평등의 이상을 뜻하며, 사회적 평등은 균분을 넘어서 사회적 관계의 평등 실현에 그 핵심이 있다.
사회적 평등의 이상으로서 평등 원칙은 몫 없는 사람들의 들리지 않던 말, 의미 없는 소음을 사회정치적 의미를 갖는 목소리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수많은 부스러기들의 외침이 유의미한 시민의 목소리로 제대로 고려되고 관심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바로 정의로운 사회이고 이런 사회야말로 인류의 염원인 평등의 이상으로서의 사회적 평등 이상이 지향하는 바이다.
다만 롤스를 논의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는 김도균 교수와 달리 저자는 장애인, 특히 인지장애인을 배제한 이성주의 철학을 넘어 위계가 아닌 차이를 강조한 스피노자와 마굴리스, 모든 개체를 가로지르는 무한한 연관 관계가 각 개체의 실존 및 활동의 조건이 된다고 한 발리바르의 관개체성(貫個體性, transindividuality)을 강조한다.
그리고 경제적 분배와 문화적 인정 양자를 비환원론적인 방식으로 결합해, 정의란 "경제적 영역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물질적 자원을 분배받을 수 있어야 하고, 문화적 영역에서 모든 참여자들의 동등하게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하며, 정치적 영역에서 모든 당사자가 합당하게 대표될 수 있어야 한다"는 낸시 프레이저의 참여 동등(parity of participation) 정의론을 옹호한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장애 문제를 보면, 자립과 정상은 바람직한 것, 의존과 비정상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는 자립/의존의 이분법을 해체해 홀로서기도 낙인화된 의존도 아닌 '함께 어울려 섬', 즉 연립(聯立, interdependence)을 추구할 수 있다.
자립과 의존의 관계를 재구성하게 되면 자기결정권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자기결정권은 흔히 오해하듯 독립적 주체가 혼자서 결정하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자기결정권이란 결정을 내리는 여러 주체가 서로 의존하고 의견과 판단을 소통, 조율해가며 실현할 수밖에 없는 권리이다.
사실 이 책은 읽기 쉽지만은 않다. 필자는 주로 장애가 사회적 관계의 문제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소개했지만, 그 외에도 더 많은 내용과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장애학이라는 용어부터가 생소할 것이다. 이 책으로 장애학을 공부함으로써 장애뿐만 아니라 여러 이유로 차별과 억압을 받는 소수자 문제를 이해하고 정의, 인권, 민주주의를 고민할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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