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
이나영
길고 긴 팬데믹 시대를 건너며 답답하고 우울한 날이면 일단 나가서 걷고, 화원에 가곤 했다. 이레카야자, 스킨답서스, 칼라데아프레디, 아이비, 고무나무, 피토니아, 율마, 산세베리아... 등등을 하나 둘씩 손에 들고 와 집과 사무실에 두고 키웠다.
화분의 개수가 하나 둘 늘어가는 재미도 있었고, '반려식물'에게 애정을 쏟으며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이 막막한 시기에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식물이 가진 생명의 에너지로 인해 내 안의 불안감이 조금 잦아드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끔씩 화원에 들러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나 둘 집어오는 화분들이 내 공간을 채우면서, 그 장소는 점점 나다워지는 것만 같았다. 좀 더 애정이 생기고 좀 더 편안해졌다. 매일이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것도 식물이 가진 매력 중 하나이다. 오늘 물을 주면 내일 좀 더 자라있거나, 햇빛에 내어놓은 화초들이 태양을 향해 꼿꼿하게 허리를 펴는 모습을 보는 일들은 흐뭇하다.
책장 위의 몬스테라, 창틀의 선인장, 식탁 옆 고무나무 등이 내 방과 거실이 가구와 어우러져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면서도 조금씩 키가 커지고 새순을 내어놓는 일을 매일 확인하며 살아간다. 나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에 기특할 때도 있고, 관심을 주는 만큼 윤기를 내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며 그 에너지에 놀라고 감동을 하곤 한다.
나는 내 안의 어떤 에너지를 끌어모아 어떤 꽃을,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일까. 매일 꿈을 꾸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열심히 살아내려 하다가도 지칠 때가 있다. 해도 안 되는 것 같을 때도 있고, 애써보아야 소용없는 일들도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럴 때 화분 안에서 조용히 움트는 새싹들, 새로운 가지를 밀어내는 화초들의 에너지를 보며 무언가 배우고, 느낀다.
어제는 마트 한켠에 있는 화초 코너에서 작은 아이비와 피토니아 화분을 샀다. 하얀색 무늬가 그려진 피토니아는 처음으로 식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친구에게 선물로 건네주었고, 아이비는 오늘 내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아이비가 길게 자라면 높은 곳에 걸어둘까, 아니면 예쁜 화분을 사서 테이블 위에 올려둘까. 이리저리 궁리해본다. 이렇게 나만의 플랜테리어를 조금씩 시도해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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