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남의 잔디에 핀 민들레를 뽑았나

[숲과 들에서 누리는 자연산책] 꽃이냐, 잡초냐

등록 2022.05.10 11:00수정 2022.05.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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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잔디를 뚫고 나온 민들레

잔디를 뚫고 나온 민들레 ⓒ 용인시민신문


날이 좋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야외 잔디 마당이 잘 관리돼 있는 카페에서 따듯한 햇볕을 쬐며 수다를 떨던 도중, 마당 한구석의 민들레가 눈에 들어왔다.

두 개의 꽃대 중 하나는 노랗게 꽃이 피어 있고, 나머지 하나는 솜털이 활짝 피기 직전이었다. 그 모습을 본 후로 친구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만 있으면 깃털이 활짝 펴서 씨가 날릴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 카페 주인은 알고 있을까? 내가 가서 뽑아줘야 하나? 관리가 잘된 잔디를 보니 괜스레 조바심은 더 커진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를 파하는 시점에 달려가 얼른 민들레를 뽑아 화단 구석 잡초를 쌓아 놓은 곳에 던져 버렸다. 뿌듯한 마음에 돌아서는데 친구들이 난리다. 남의 마당에 있는 이쁜 꽃을 함부로 뽑은 것도 모자라 버리기까지 했다며 다들 한마디씩 했다.

처음 전원생활을 할 때 이 친구들이 필자 집에 놀러와 마당에 펴있는 민들레를 보곤 꽃이 너무 이쁘니 가꿔보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두었다가 다음 해에 온통 망가진 마당 복원을 위해 온 가족을 동원해 손끝이 아리도록 민들레를 뽑았던 기억이 있다 보니 마당을 가져보지 못한 '도시 촌놈'들의 속절 없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a  민들레는 자갈밭도 가리지 않는다

민들레는 자갈밭도 가리지 않는다 ⓒ 용인시민신문


여러 노래 가사와 씨가 흩날리는 모습이 신기해 이 풀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도시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내게 민들레는 이따금 샐러드를 만들 때 다른 채소들과 함께 섞어 넣거나, 고기랑 쌈 싸 먹는 식물이라는 생각 외엔 잡초 중 독종 상위 순위로 올라가 있는 식물일 뿐이다.

꽃대만큼이나 깊게 박혀 있는 뿌리까지 제거하지 않으면 여지 없이 다시 풀이 올라오고 뿌리까지 캐서 버리면 뽑혀 있는 상태에서도 꽃은 어느새 하얀 털 뭉치로 바뀌어 씨를 날리고 있는 생명력이 엄청나게 강한 녀석이다.

친구들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하나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민들레가 잔디 마당을 망친다는 이야기를 해주자니 지난날 친구들의 무지(?)한 조언으로 인한 필자의 10년 전 고생담까지 꺼내어 자칫 친구를 원망하는 서로 무안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 다른 이야길 해볼까 했다.
 
a  꽃처럼 활짝 핀 민들레 씨앗

꽃처럼 활짝 핀 민들레 씨앗 ⓒ 용인시민신문


하지만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아 곤란한 상황이 됐다. 남의 마당에 부린 시골 사람의 오지랖이 우스갯소리로 두뇌 풀가동의 순간으로 뒤바뀐 것이다.

이런 작은 소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컵을 가지러 온 카페 주인밖에 없다는 판단에 친구들 앞에서 민들레를 뽑아버렸다고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고백했다. 카페 주인의 미소와 함께 자기가 못 본 걸 뽑아줘 고맙단 인사가 끝나자마자 작년 필자 마당에 피었던 꽃들을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꺼내주며 한참을 카페 주인과 서로의 마당에 대해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집에 오니 너털웃음이 나왔다. 인터넷으로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를 찾아 들으며 따라불렀다. 기타리스트 마사키 키시베의 '민들레'도 정겨웠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남편이 보기 힘든 하얀 민들레가 주차장 옆에 있다며 가서 보라 말했다. 진미령의 '하얀 민들레'도 플레이 리스트에 넣었다. 민들레에게서 처음으로 보상을 받은 것 같은 그런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송미란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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