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대에 진학해 제대로 된 수업과 지도를 꾸준히 받는다면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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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백수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전업 작가에게도 나름 소화해야 할 일정이 있는 데다가, 입시곡을 연습해서 경쟁을 뚫고 음대에 입학할 실력도 자신감도 없다. 그러니 만학도의 꿈은 언감생심이라 여겼다. '피아노 사랑' 카페에서 아래의 게시물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 지인이 대학병원 교수님인데 얼마 전에 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 입학하셨어요. 자녀들 다 대학 보내고 본인 인생 즐기시겠다고요. 연주 영상 녹화해서 지원하시던데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지원 가능할까요? 사이버대학교에 피아노과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어릴 때 경제적 여유가 없어 피아노를 계속하지 못하고, 진로를 바꾸어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비전공자입니다. 꽤 오래 피아노를 쉬어 손가락이 잘 따라가 줄까 걱정도 되고, 이제 나이도 너무 많긴 한데, 비전공자가 편입할 수 있는 서울사이버대학교에 대해서 이곳에서 정보를 얻어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이버대학이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것 아닌가? 피아노를 온라인으로 배우다니, 그게 가능한가? 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로 검색을 해보니 따로 입시곡을 준비할 필요 없이 누구나 입학 가능하단다. 피아노실기 과목을 수강할 학생은 입학 지원 때 연주 동영상 제출이 필수이지만, 당락을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고 지원자의 피아노 수준을 파악하는 용도란다. 그래?
만약 내가 음대에 진학해 제대로 된 수업과 지도를 꾸준히 받는다면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피아노 실력을 이용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는 어렵겠지만, 피아노를 전공생 수준으로 근사하게 연주하는 나 자신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보상 아닌가. 혹시 누가 알아? 내 안에 숨겨졌던 엄청난 잠재력이 발휘되어 대한민국 음악계의 모제스 아저씨가 될지도.
전공자도, 비전공자도 함께 공부하는 음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한번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에 연락해 취재 의사를 밝히고 약속된 시간에 방문했다. 비치된 홍보 책자를 집어 들어 살펴보니 여느 피아노과처럼 4년 교육 과정에 이론과 실기 과목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체계적이다.
교수와 학생 양측 입장을 모두 들어보고 싶어 피아노과 학과장인 윤소영 교수와 학생회장 장연주 씨를 따로따로 인터뷰했다.
둘의 얘기를 종합하면 피아노과는 2015년에 개설되어 2022년 5월 현재 재학생이 400명이 넘으며 그중 대다수가 직장 생활과 병행한다. 30,40대가 많고 50·60·70대 학생도 있다. 피아노과로서는 유례가 없는 온라인 학습 시스템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주목받고 있는데,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신입생이 많이 늘었고 학교의 교육 시스템에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에두르지 않고 불편한 질문부터 던졌다.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사이버대학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냐,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보니 이곳에서 학사 학위를 받는다 한들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윤소영 교수와 장연주 학생회장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장점은 여기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다른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피아노에 열정은 많지만 늦은 나이에 입시곡 준비하는 게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런 부담 없이 입학해 학사 학위 취득을 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다. 피아노 관련 다양한 자격증을 따는 데에도 유리하다. 예컨대 특정 수업들을 이수하면 국가 공인 문화예술교육사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장연주 학생 : "의외로 음대 전공하다가 여기 다시 오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교수진도 훌륭하고 학비도 적게 드니까요. 대학원까지 염두에 두고 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여기서 학사 과정 밟고 대학원을 지원하면 대부분 합격하더라고요. 일단 본인이 실력도 되고 열심히 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곳 교수님의 티칭이나 레슨이 먹힌다는 거잖아요."
윤소영 교수 : "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낮지 않습니다. 여기 교수들이 다 일반 대학에서 가르치시다 온 분들인데, 여타 학교들과 학생들 수준을 비교했을 때 뒤처짐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 피아노과 신입생들을 보면 기초적인 수준부터 아주 잘 치는 학생까지 골고루 있는데,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맞춤형 교육이 제공되고 있고 잘 치는 학생들의 비율이 낮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면면을 보면 의사, 경찰, 주부 등 각자 하는 일도 다양하고 나이도 많지만, 부산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2주에 한 번씩 대면 레슨 받고 가는 학생도 있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한단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인 40대 나이의 장연주씨 또한 그런 경우였다.
장연주 학생 : "2017년에 서울사이버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성악을 하시고 어머니는 교육자인데 제 이름을 '연주'라고 지어주실 정도로 제가 음악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도 피아노가 싫지는 않았지만, 다른 진로를 선택했는데요. 교회에서 성가 반주도 하고 지휘도 하다 보니, 뭔가 좀 갈증을 느꼈어요. 서양 음악사, 음악 이론, 화성학과 음악분석 같은 이론적인 부분을 좀 공부하고 싶었는데, 다른 교회 지휘자분이 서울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를 소개해 주셨어요. 제가 세 아이의 엄마고 직장도 다니니 전적으로 대학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저한테 딱 맞는 학교였어요."
원래 이론 강의 위주로만 들을 생각이었는데, 실기 교수진이 워낙 좋아 대면 레슨까지 신청하게 되었다고 한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실기지도 교수진을 보면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했고 피아니스트로서도 명성 높은 이경숙 교수를 필두로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들이다.
학교 연습실의 피아노도 야마하 그랜드이고 파이프 오르간도 있을 정도로(오르간실기 수업도 있다) 시설이 좋아 뭔가 제대로 배운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집에서도 사일런트 피아노로 새벽 2시까지 연습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