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동 모임 단체 셧업앤롸이트 웹사이트
Shut up & write
아내랑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방법을 찾았다. 만나서 입을 닥치고 무조건 쓰는 프로젝트(Shut Up and Write)가 포틀랜드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거라도 해보자! 자세히 알아보니까 최근에 팬데믹 때문에 모임이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한다.
팬데믹 영향으로 아직도 못하는 일이 많지만, 그냥 포기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간절했다. 아내가 둘이라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두 명이라고 못 할 것도 없다. 이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말하지 않고 묵묵히 쓰기만 하면 되는 거다. 아무 카페나 가서 노트북을 꺼내서 쓰기 시작하면 된다.
이렇게 아내랑 의기투합해서 닥치고 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뽑는다고 프로젝트를 다음날부터 당장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카페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힘들게 왔는데 노트북에서 예전에 쓰던 글을 뒤적거리며 망설이는 나를 발견했다. 못 쓰고 있던 경험이 순간 해일처럼 밀려왔다. 중대한 결심까지 하고 어렵게 나왔는데, 또 못 쓰고 있는 나를 보는 것은 더는 못 참겠다.
내 경험이라도 정리해보자는 심정으로 새 파일을 열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줄줄 써 내려가고 있는 게 신기했다. 일단 독자도 비평도 생각하지 말자. 내 생각만 정리하기로 하니까 막힘없이 쓸 수 있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니까 홀가분했다. 그동안 못 쓰고 있었던 게 맞았나? 어차피 남들한테 보여주기 전까지는 온전히 나의 글이다. 맞춤법이나 문법이 틀릴까 신경 쓰지 않고 내 생각만 꺼내서 털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주변을 돌아보니까 혼자서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 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카페 전체가 닥치고 쓰기 프로젝트의 공동체처럼 보였다.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있을 뿐이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여기로 몰려온 게 아닐까. 아내도 옆에서 무슨 글을 쓰는지 키보드를 열정적으로 치고 있다.
막혀 있던 시냇물이 다시 흐른다. 고인 물이 풍기던 악취도 어느 틈에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까지 어디선가 불어오고 있다. 에어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카페를 활기차게 휘젓고 돌아다닌다. 여기까지 나와서 대단한 글을 쓴 건 아니지만 무슨 글이든지 시작할 수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다시 예전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닥치고 쓰기 위해 나와야 한다. 집에 있는 오피스는 쓰지 못한 경험이 너무 켜켜이 쌓여 있어서 책상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로지 쓰기 위해, 나한테 쌓인 스트레스가 보이지 않는 카페로 나왔다. 오늘은 소셜 미디어도 확인하지 않았고 뉴스 사이트도 찾아보지 않았다. 세상일보다 내 글쓰기가 최우선 순위였다.
문서 프로그램만 띄워서 바로 글쓰기에 들어갔다. 이것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아내랑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노트북 코드도 가져오지 않아서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만 쓰려고 왔다. 마치 마감 시간이 정해진 글을 쓰는 것처럼 쫓기듯이 달렸다.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닥치고 쓰기 프로젝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잘 진행되었다. 매일 이렇게 잘 되지는 않겠지만 경험이 쌓이면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겠지. 예전의 글 못 쓰던 나를 벗어나기 위해 필명도 새로 만들었다. 며칠 전에 봤던 탑건 영화의 캐릭터가 문득 떠올라서 '매버릭'으로 결정했다. 비행하는 게 너무 좋아서 승진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사는 매버릭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머릿속에 돌아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잠재우고 마음껏 쓰니까 날아갈 것 같다. 나를 꾹꾹 눌러서 땅속으로 파묻는 무거운 짐을 모조리 덜어내고 쓰는 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오늘의 작은 성공이 모이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멋지게 비행하는 날이 찾아오겠지. 아내도 나도 집을 박차고 나와서 글 하나씩 완성해서 돌아가니 마음이 뿌듯하다. 작은 날갯짓이 큰 비행으로 이어지길 믿고 일단 닥치고 쓰기 프로젝트에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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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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