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세권의 학원개수호갱노노로 본 학세권의 학원 개수
장은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뒤 같은 반이자 같은 단지에 사는 엄마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반갑지만 낮선 인사를 나눴습니다. 간단하게 반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의 안부도 물었습니다. 그러다 한 엄마가 운을 띄웠습니다.
"이렇게 모이자고 한 것은 학원 보낼 때, 아이들 그룹 만들어서 보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제가 신도시로 이사와 처음 학원에 체험 수업을 받으러 갔을 때, 들었던 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그룹 만들어서 오시면 원하는 시간에 반 만들어드려요."
저는 속으로 '내가 어떻게 그룹 만들 정도의 아이들을 모을 수 있나, 그냥 있는 반에 들어가면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학원에 치여 보내고 싶은데 못 보낼 때 반을 만들어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또 학원 반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 선에서 아이들의 그룹을 만드는 듯한 뉘앙스를 받았습니다.
처음 아이를 입학시키고 가장 놀란 것은 아이들이 영어학원을 기본값으로 하여 태권도, 미술, 음악, 수학 학원을 다니고 있단 사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우리 가족이 이사온 곳은 일명 '초품아'로 불리는, 초등학교가 단지 내에 있는 아파트이며 집 앞에 학원가가 형성 되어 있는 곳입니다.
부동산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보지 않고 제가 다시 직장을 다닐 것과 아이가 스스로 학교를 다녀야 할 때를 대비해 불안도를 낮추기 위해 단지 내 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우연히도 학원가 앞 아파트였던 것입니다.
이사 후에 부동산을 공부하면서 1. 입지 2. 직주 근접 3. 학군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중 입지를 포기하고 직주 근접과 그리고 우연히도 학군이 아닌 학세권으로 이사왔단 걸 인지했습니다.
한국 부동산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세대별 아파트 매수 비중을 살펴보면 3040이 5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3040은 육아를 주로 이루는 세대이며 자녀의 교육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3040 자녀를 키우는 세대가 대치동으로 갈 수 없습니다. 직장이나 집값 때문입니다. 내가 갈 수 있는 직주 근접 중에 학세권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학세권은 단조로운 삶을 조장합니다. 오죽 하면 같은 단지에 살던 딩크족 부부는 이 곳에서 살 수 없다고 이사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겐 굉정히 매력적입니다.
학세권의 장점은 유해시설이 없고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학원을 다니는 번거로움이나 시간 낭비가 없다는 겁니다. 학원은 100개 가까이 되지만 PC방이 한 개이며 주변 매장들은 아이들을 학원을 보내고 엄마들이 기다리기 위해 가기 위한 카페외에 아이들의 식사 한 끼를 위한 한솥도시락, 주먹밥 집, 떡볶이 가게 등입니다. 술 한잔하며 밥 먹을 식당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저녁 시간에 중식당을 가면 학원 가기 전에 식사하는 학생들과 가족 단위로 어린 아이와 온 가족들만이 가득합니다.
이곳에 이사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엄마들 모임에서 주변 지역에서 이곳 학원가로 수업을 받으러 오고 여기서 잘하는 중-고등학생들은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이곳은 대치동으로 가기 위한 사교육 2번지 입니다. 물론 사교육 2번지는 제가 사는 곳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으며 부모와 아이들의 불안과 걱정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데도 학원을 6개까지 다니는 아이들도 보았으면 학원을 다니느라 친구와 놀 시간이 없다고 한탄하는 아이 친구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명명한 사교육 2번지, 혹은 우리가 부르는 학세권에 살고 있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사교육에 기대는 길에 빠지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연히 사교육 2번지에 살고 있는 저의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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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맞벌이, 지금은 전업주부
하지만 고군분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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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학세권'에 발을 들인 나, 정신 바짝 차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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