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윺공자법 제정'을 요구하는 삭발식 장면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오른쪽에서 두 번째)도 지난 6월 10일 6.10민주항쟁 35주년 기념식이 열린 성공회대성당 입구에서 동생 박종철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삭발을 했다.
김학규
대한민국 현행 10호 헌법의 전문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현행 헌법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 나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들을 기리고 감사를 표하는 '독립유공자법'(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민주유공자들을 기리고 감사를 표하는 '민주유공자법'이 마땅히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라는 문제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4.19유공자와 5.18유공자를 기리는 법률('국가유공자법'과 '5.18유공자법')이 이미 있다는 점을 들어 '4.19민주이념을 계승'했다는 헌법정신은 이미 법률로 구체화했다는 주장을 펼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4.19유공자와 5.18유공자만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하는 법률에 만족하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민주유공자법에 포함돼야 할 민주유공자는 4.19유공자와 5.18유공자만이 아니라, 당연히 1964, 1965년의 6.3항쟁을 비롯해 1970년대의 반유신투쟁, 1980년대의 6월 민주항쟁을 비롯한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참여해 희생하고 헌신한 모든 이들을 그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는 독립유공자법의 적용 대상을 3.1운동 참여자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자로 제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이승만 정부 시절, '독립유공자법' 없는 독립유공자 훈포장
이승만 정부 시절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은 '독립유공자법'이 없는 가운데 단지 '건국공로훈장령'에 근거해 이뤄졌다. 첫 시행은 1949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1주년 기념식에서 행해졌다. 그런데 결과는 참혹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 이시영 당시 부통령만이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1등 훈장)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기 전체로 그 기간을 넓혀도 참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기간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사람은 전부 16명에 불과했다. 그 대상도 이승만과 이시영을 제외하고는 전부 외국인이었다. 독립운동 기간 내내 대표적인 '외교론자'로 알려져 있던 이승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이승만이 감사를 표한 한국의 독립을 도운 14명의 외국인 중에는 1942년 이승만이 설립한 한미협회에 참여한 미국인이 대부분이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헌신하다 순국한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은 물론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 박은식과 김구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인물 그 누구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객관적인 기준을 정한 법률이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건국공로훈장의 수여는 '공과 사'도 구분하지 못하는 한 권력자에 의해 이렇게 좌지우지됐던 것이다.
4.19혁명의 결과로 등장한 장면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면 정부가 1960년 10월 1일 '신정부수립 경축식'에서 독립유공자 11명을 선정해 기념품 증정을 하겠다고 나오자, 대상자로 선정된 김창숙(유림계 독립운동가)과 유석현(의열단) 등이 '대상자 선정의 자의성'을 문제 삼으면서 경축식 참석 자체를 거부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나마 법률에 근거해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일을 시작한 것은 '국가유공자등원호법(1962년 시행)'과 '상훈법(1964년 시행)'이 제정된 이후였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민주유공자법 없는 민주유공자 훈포장
문재인 정부는 2020년 6월 10일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씨,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씨,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씨 등 19명에게 처음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 모란장 등 훈포장을 수여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에도 박래전 열사를 비롯한 29명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해 훈포장을 수여했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도 이를 계승해 2022년 6월 10일 6.10민주항쟁 35주년 기념식에서 박종만 열사, 김귀정 열사 등 19명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해 훈포장을 수여했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유공자법 없는 민주유공자에 대한 훈포장은 이승만 정부와 장면 정부 시절의 독립유공자법 없는 독립유공자 훈포장과 마찬가지로 '자의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누가 민주유공자인지 객관적인 기준을 정해 그 대상을 분명히 하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은 계속 미루면서 매년 정부에서 임의로 특정인을 민주유공자로 선정해 훈포장하는 방식이 지속된다면, 독립유공자 표창을 거부했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장 내년부터 훈포장 수여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민주유공자법 제정, 계속 미뤄지는 이유는?